나눔터 82호 <생존자의 목소리 ④>
#Metoo 엄마에게 (쓰는 편지)
- 리아
<생존자의 목소리>는 연 2회(1월, 7월) 발간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소식지 [나눔터]를 통해서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된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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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3호까지 2회 연재됩니다.)
엄마, me 는 나 라는 뜻이고, too는 나도, 역시나 똑같다, 라는 뜻이야.
엄마, #, 이 우물 모양은 해시태그라는 건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글을 쓸 때 이 우물 모양, (이거는 컴퓨터 자판에 숫자 3 이랑 같이 있어) 이 모양을 metoo 하고 같이 쓰면, “#metoo” 이렇게 되잖아요. 그러면 이 걸 붙인 글들은 모두 한번에 찾아볼 수 있고 연결할 수 있어. 검색하는 칸에, #metoo 이렇게 써 넣으면 비슷한 글들이 줄줄이 나와. 오늘은 나도 한번 #metoo 써보려는데, 내 이야기 속에 엄마의 이야기야.
…
엄마, 미안해. 엄마 너무 미안해. 엄마의 아픈 기억을 물어서. 엄마도 이야기 했듯이 이 이야기를 하고 나서 엄마는 험한 꿈을 꾸고, 밤새 뒤척이고, 어떤 밤에는 잠이 안 들어서 엄마가 수면제를 먹었잖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 엄마가 그런 기억이 있는 줄 몰랐어. 엄마한테 괜히 옛날 이야기를 물었어. 정말 내가 몰랐으면 좋았겠다, 라고 생각했어. 그럼 내가 아빠에 대해서 훨씬 더 너그러워 졌을 거니까. 그러면 내가 아픈 아빠에 대해서 불쌍하게 생각하던 그대로 지낼 수 있었을 테니까.
엄마 이야기를 들은 그날 이후로 아빠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어. 아빠하고 같이 밥 먹는 것도 싫었고, 아빠하고 말 섞는 것도 싫었어. 내 마음 같아서는 엄마가 어서 아빠하고 이혼했으면 좋겠는데, 병든 아빠가 불쌍해서 아빠 돌아가실때까지 밥은 해줘야 한다는 엄마 말에 나도 할 말이 없었어. “엄마, 어떻게 가해자 하고 살아? 어떻게 40 년 넘게 살아왔어?”라고 물을 수 없었어. 그러면 엄마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아니, 나를 용서할 없을 것 같아서. 엄마가 집에서 도망쳐 나올 때 마다, 다섯 살의 내가 엄마를 조르면서 그랬다면서. “엄마, 집에 돌아가자, 응? 아빠하고 오빠야 하고 같이 살아야지. 우리 집에 빨리 안 가면 할아버지한테 혼나잖아. 빨리 집에 가자, 응?”
엄마, 내가 그 다섯 살의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엄마는 그 쪼그만 나를 보호하려고 그동안 말하지 않았으니까. 엄마는 내가 삼십대 중반이 되도록 말하지 않았으니까. 엄마 속은 괜찮아? 시꺼멓게 문드러져서 다 타버린 건 아닌거야? 나랑 이야기 하다가, 내가 괜히 엄마를 들쑤신거지, 그래서 엄마가 밤새 기억과 씨름하고 수면제를 먹어야 했어. 미안해 엄마.
엄마, 엄마는 그런데도 어떻게 그렇게 아이 같이 해맑게 웃을 수 있어? 별 것 아닌 것들에, 앞에 공원에서 시소를 타면서, 아빠의 썰렁한 농담에, 어쩜 그렇게 활짝 웃을 수 있는지. 세월이 흐르면 괜찮은 거야? 과거를 붙들고 있는 건 나인가봐. 아빠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나 인가봐. 엄마. 재작년에, 작년에 내가 애인이랑 헤어지고 너무 힘들 때, 예전처럼 다시 웃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 나는 다시는 그렇게 신나게 웃을 수 없을 것 같았어. 나에게 웃음이 남아있을까. 그리고 그에게는. 엄마의 웃음을 볼 때마다 나는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엄마가 컴퓨터 기초반을 들을 때, 강사 선생님이 엄마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수업에서 예시로 사용했다고 엄마가 나에게 자랑을 했잖아. 내가 찍은 엄마의 사진… 엄마와 내가 나들이를 갔을 때 찍은 사진. 엄마가 내가 든 카메라 앞에서 그렇게 활짝 웃어서 기뻐. 그런데 엄마, 나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그렇게 활짝 웃기까지는. 그렇게 아이같이 웃기까지는.
…..
“엄마, 그때 왜 낙태 수술 한 거야?”
어쩌다 엄마와 낙태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 엄마는 매번 조금씩 말이 달랐어. 어떤 때는 한번 했다고 하고, 나중에는 두 번 했다고 했어. 오빠 전에 한번. 나 전에 한번. 나 역시 낳을까 말까 고민했다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무섭기도 하고, 엄마한테 서운하고 화도 났었는데 이제는 이해해. 자식 하나는, 게다가 아들은 아빠하고 놔두고 도망갈 수 있는데, 자식이 둘이 되면 엄마가 떠날 수가 없잖아. 아이를 셋 낳고 도망가지 못한 그 선녀처럼. 자식이 하나 하나 늘어갈수록 엄마는 더 도망갈 수 없는 거였잖아. 게다가 딸은 꼭 엄마가 키워야 험한 꼴, 성폭력 안 당한다고 엄마는 굳게 믿고 있으니까, 남자는 다 짐승이라는 걸 엄마는 경험했으니까, 엄마는 가출 할 때마다 나를 데리고 간 거였어. 외갓집으로, 이모 집으로… 거기서 그 쪼그만 나는 집에 가자고 조르고.
집에서 도망쳐서 갈 곳이 없는 엄마에게 이모가 데리고 간 곳은 공사장 노가다 판이었어. 공사장에서 여자들은 커다란 고무 바케스에 벽돌을 잔뜩 싣고 머리에 지고 날랐어. 엄마는 벽돌을 하루 나르고 나서 몸살을 했고, 이모가, 거 봐라, 농사짓는 게 더 수월하다며 엄마를 설득했어.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초등학교도 안 나온 엄마가 시집을 떠나서, 집을 도망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노가다와 농사, 그런 험한 일 뿐이었지. 그리고 아마 성매매 시장… 대한민국에서 수 천, 수 만명의 여성들이 일하고 있는 그 시장. 이제는 다른 나라 여자들을 데리고 와서 장사하는 그 시장.
….
아빠는 싫다고 하는 엄마와 억지로 성관계하고 임신시켰어. 엄마는 아빠하고 헤어지려고 임신을 떼는 수술을 하고 아빠를 떠나려고 했고. 하지만 아빠는 끈질기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의 언니와 형제들에게 엄마랑 결혼하고 싶다고 설득하고 마음을 사려고 했었다지. 엄마는 아빠와 헤어지려고 6년을 도망 다녔는데, 한번 한 남자에게 몸을 버린 이상, 다른 데 시집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포기 하듯이 결혼을 했어. 엄마랑 얼마 전에 목욕탕에 갔을 때, 시장 과일장사 아줌마가 그랬잖아. 아줌마 때는 맨 처음 빤스 (팬티) 벗는 남자한테 시집가야 하는 거였다고. 엄마가 두고 두고, “그때 안 했어야 했다”는 건 결혼이었어. 그때 결혼하지 않았어야 하는 거라고 엄마는 흘러가듯 말을 흐리곤 했어. “내가 초등학교만 나왔어도 ….”
그 말도 차마 입밖에 꺼내지 않았던 엄마.
맞아, 엄마 말이 맞는데, 엄마가 읽고 쓸 수 있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세상은, 한국은 그렇게 여자한테 살기 좋은 데가 절대 아니야. 그나마 한 남자한테 매어 있는게 안전한 데가 한국이었고, 한국이지. 남편 없는 여자는 아무나 강간할 수 있는 무주공산으로 봤다잖아. 여자가 나갈 수 있는 세상이라곤 정말 없더라고. 엄마 말이 너무 맞았어. 학교 교사가 그나마 여자들에게 가장 안전한 보루더라고. 엄마가 그렇게 부러워 하던 엄마의 외사촌처럼, 나도 교사가 되라는 엄마 말을 나는 왜 안 들었을까? 그 쪼그만 다섯 살의 내가 본, 엄마의 그 시꺼먼 마음을, 그 많은 눈물을 기억하고 싶었나 봐. 이렇게 말로 글로 쏟아내고 싶었나 봐. 그래야 죽지 않을 것 같았나 봐. 그래야 숨 쉴 수 있을 것 같았나 봐.
생존자 리아 님의 <#Metoo 엄마에게 (쓰는 편지)>는 83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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