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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대해서/[나눔터] 생존자의 목소리

나눔터 84호 <생존자의 목소리④> 기억 그 이후 -푸른나비

기억 그 이후

 

푸른나비

 

<생존자의 목소리>는 연 2회(1월, 7월) 발간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소식지 [나눔터]를 통해서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된 코너입니다.

투고를 원하시는 분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대표메일 (ksvrc@sisters.or.kr)로 보내주세요. ☞[자세한 안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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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입니다. 8살 이후 10여 년의 어린 시절 기억이 봉인된 것처럼,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경력 단절된 한 부모로서, 전직을 위해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했습니다.

 

자격증에 관련한 기초적인 상담 영역이 나의 무의식을 건드렸는지 밤에는 악몽을 꾸고, 낮에는 펼친 책 위로 남자 성기가 울퉁불퉁 튀어 오르는 환상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자격증을 딴 것이 너무 아까워, 1년만 경력을 쌓고자 가족경영인 직장에서 정말 1년만 버티다, 현재는 쉬고 있습니다.

 

부부로 이루어진 그 직장에서 만난 상사들은 가해자였던 제 부모의 성향을 너무 닮았습니다. 겉으로만 좋은 사람인 척하는 남자 상사와 윽박 지르고 소리 지르는 여자 상사 밑에 있으니 마치 가해자였던 어릴 시절의 부모와 함께 사는 것 같았습니다. 나와 함께 했던 직장동료는 한참 어린 나이인데도 경력 때문인지 본인 인성 때문인지 내게 끝까지 반말을 하고, 존중이 없었습니다. 그런 직장 동료에 대한 느낌은 마치 나의 여동생을 보는 듯 했습니다.

 

몇 년 전, 여동생에게 아빠라는 가해자의 학대에 대해 밝히며, 가해자를 피하면 다음 차례가 동생이 될까 싶어서 널 위해 오래 견뎠노라 어렵게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여동생은 그건 언니가 반항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하였고, 제가 태어났을 때 종교 집안인 대가족인 일가는 이미 아빠라는 가해자가 학대할 것을 알면서도 방치한 것이며, 언니가 친딸이 아니라서 가해자의 먹잇감이 된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 전하고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직장 구성원과 가해자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온몸이 부서질 듯하고 청력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그 직장에서 한 달만 견디면 훨씬 더 좋은 환경으로 갈 수 있었지만, 이명과 더불어 물속에 빠져있는 듯한 느낌에 시달려서 큰 병이 될까 겁이 나 1년을 채우고 바로 그만두었습니다. 예전에 일이 힘들기로 유명했던 직장을 10여 년 넘게 다닌 것보다 더 힘든 것 같았습니다. 과거는 흐릿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쉬는 동안 스트레스가 줄어서 소리가 울렸던 귀는 잠잠해졌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경제적 부담은 있어도 마음만큼은 정말 편안합니다. 원래 제 한쪽 귀의 청력이 약한 것은 오래 전 검사했을 때 알았는데, 의사는 어릴 때부터 청력이 안 좋았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 말을 그 당시 살아있던 여동생에게 전했더니, 자신은 어릴 때 귀아픈 걸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서 안 좋아졌을 것이고 언니는 엄마에게 맞아서 그리된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이런 집안이 너무 창피하다 했습니다. 막내 남동생도 엄마가 큰누나를 너무 괴롭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말들을 그땐 그랬나보다 하고 큰 감정 없이 넘겼습니다. 살림을 못 하는 엄마 대신 부모 없는 소녀 가장처럼 집안일을 도맡고 동생들을 돌보면서 가해자인 부모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다는 것을 옛날부터 인지는 했지만,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 제 스스로 믿어 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마음속에서 큰 요동은 치지 않습니다. 화가 나긴 하지만 그것보다, 제가 말하고 나서 다른 사람이 듣고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되는 마음이 더 큽니다. 제 얘기를 이해할까요? 겪지 않으면 모를 일일 텐데.... 무시당하고 학대받은 내 인생을 누군가가 저울질할까 두려운 것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가해한 그들에 대한 분노보다 여전히 어린 시절의 버려진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큽니다.

 

요즘 일을 안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 옛 기억이 자꾸 찾아옵니다. 아빠라는 가해자의 두툼한 손에 발목이 잡혀 바닥에 질질 끌려갈 때, 얼굴에 닿았던 그 차갑고 축축했던 장판의 촉감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집에서 길렀던 고양이들이 엄마라는 가해자 손에 하나둘 사라졌던 기억이 납니다.

 

원 가족이 길렀던 고양이는 모두 길고양이였습니다. 아빠 가해자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데 생선을 삶아주니 그 냄새를 못 이겨 한 마리 정도는 마당에 있다가 집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밥 달라 애교부리는 길고양이를 좋아하고 즐기는 아빠 가해자였습니다. 오직 고양이 밥만 챙기고 그로 인한 뒤처리는 집에 있는 사람 몫입니다. 가해자가 자신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걸 못 견디겠다고 짜증 내는 엄마. 가해자 말을 집안일에 대한 스트레스로 흘려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고양이들은 한 마리씩 있다가 사라지길 반복했습니다. 엄마 가해자가 지나가던 개장수에게 고양이를 보내거나 못 찾아오게 멀리 버스종점까지 가서 내다 버려 버리라고 막내 남동생에게 시키거나, 우악스럽게 고양이를 손으로 잡아 쥐고 당장 갖다버리겠다 소리 질렀던 그 장면들이 겹칩니다.

 

어느 날인가 큰 남동생이 비오는 날 쓰레기통 옆에 버려진 어린 고양이를 구해서 데려왔습니다. 데려온 고양이는 온몸이 접착제 투성이였고 쓰레기통에 붙어서 움직이지 못한 채 울고 있었다 했습니다. 빗물에 젖어 부들부들 떨며 울어대는 고양이의 몸에 있던 오물과 접착제를 조심조심 닦아주고 모두 떼어주었습니다. 그 어린 고양이는 자기를 구해준 것이 너무 좋았던지 개냥이처럼 잘 커서 우리가 무척 예뻐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쥐약을 먹고 죽었습니다. 지금에서야 고양이를 키우는 집안에서 왜 필요 없는 쥐약이 놓여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해자가 자신보다 그 고양이를 너무 좋아한다고 고양이가 꼴 보기 싫다고 했던 엄마 가해자 말의 의미에 대해 문득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뭐지? 아빠 가해자에게 학대당하는 나를 엄마 가해자는 어떤 마음으로 본 거지?

 

근래 중학생 딸을 강간한 의붓아버지인 가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본인이 더 주도해서 딸을 죽인 친엄마 사건이 저의 마음을 더 요동치게 합니다. 중학생 소녀는 친부에게도 폭력을 당했고 의붓아버지에겐 폭력의 끝인 성폭력을, 친모에게는 살해를 당한 것으로 그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 그 정도 사건이면 사회에 경종을 울릴만한 사건이라 가해자와 그 엄마라는 사람의 얼굴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야 하는데 뉴스엔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친족 성폭력인 경우는 피해자의 신상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공개를 안 한다 들었습니다. 이미 피해자가 죽었는데 무슨 상관일까? 아무래도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법 같습니다. 세상에 따지고 바꿔야 하는데 나의 모자란 법 지식과 영향력 없는 사회적 위치로 마음에만 절실히 사무칩니다.

 

어느새 뉴스는 늘 그렇듯 냄비물처럼 들끓다 그새 사라집니다. 나의 일보다 더 화나는 그 일에 세상의 관심은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담소 자조모임 작은 말하기에서도 말하고, 날 아는 생존자들에게도 말하고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도 뭔가 후련하지 않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기억이 나면 날 수록 분노는 쌓이는데 법적으로 해결하기엔 너무 과거의 이야기이고, 시간이 지난 현재도 똑같이 여전히 가해자 위주의 세상입니다. (과연 운 없고 불행한 개인의 삶은 범죄 결과조차도 모두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것인지....) 이럴 땐 분노만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공고히 하자는 생각에 여태 고민 중에 다짐만 계속 합니다. 제가 정말 생각만, 고민만 하지 않길 바랍니다. 아무래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엔 너무 두려워서 게으르게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를 외면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 당한 고통보다, 그 수치보다 더 크게 내 몸이 떨고 있습니다. 나는 언제쯤 이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 누가 답해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