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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준강간 사건의 법적 사각지대를 찾아서 🍀: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 토론회

 

지난 7월 4일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주최인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토론회의 제목인 ‘준강간 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에 알맞은 발제와 토론이 중심을 이루었는데요. 토론회에서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이라고 명명한 판결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알아보고, 가해자에게 적용되어야 했지만 그러하지 않았던 법 조문에 대해서 토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 토론회의 개최 홍보물

 

📍 상황과 맥락이 삭제된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 판결의 문제

첫 번째 발제는 천주교성폭력상담소의 남성아 활동가님이 맡아주셨습니다. 발제는 사건의 발생과정과 판결의 요지를 상세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 준강간 사건의 사실관계

2017년 5월 친구 두 명과 클럽을 방문하였던 피해자가 술을 마시다가 정신을 잃은 상태일 때 가해자는 피해자를 데리고 경기도 외곽 모텔로 이동합니다. 피해자는 그 다음날 오전에 깨어날 때까지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가해자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휴대전화로 연락을 취하다가 다시 잠에 들어버립니다.

다음날 오후에 일어난 가해자는 피해자를 깨운 뒤 “술을 더 마시기로 하였었다”며 “단 둘이 택시를 타고 왔다”고 말합니다. 의식이 없었던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질문하지만 가해자는 그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정확히 대답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가해자는 피해자를 데리고 이동하던 전날 밤, 친구 A에게 전화하여 “피해자와 성관계하기로 했으니 집에 가는 길에 내려달라”며 “차를 가져온 친구 B에게 가자고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질문에 거짓된 대답을 한 부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의식을 찾은 뒤 피해자의 신체를 억압하며 유사강간 및 강간을 시도하였고, 피해자는 이에 저항하다가 “하려면 콘돔이라도 껴라”고 말하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후 피해자는 가해자와 모텔을 나오며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질의한 바 있습니다. 피해자의 목마르다는 말에 가해자는 편의점에서 우유를 사주었고, 그 뒤 피해자와 가해자는 헤어졌습니다.

 

    🔵 형법은 어떻게 해석되는가

결과적으로 법은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사실관계의 어느 부분에서 피해자의 피해가 인정되지 않고, 가해자의 범행이 처벌받지 않은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형법 제299조 준강간, 준강제추행’이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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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조(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제297조의2(유사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제298조(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 제297조의2 및 제298조의 예에 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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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그리고 준강간과 준강제추행의 조문

 

범죄자를 형법에 근거하여 처벌하기 위해서는 형법 조문을 구성하는 구성요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고, 그 행위가 정말 위법한지 위법성을 따져야 하며, 그 책임이 귀속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강간 등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구성요건이 충족되어야 하고, 준강간 및 준강제추행의 경우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라는 구성요건이 성립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피해자가 행위를 허용하였는지의 여부는 폭행과 협박이 성립을 좌우할 수도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한편 심신상실과 항거불능의 정도가 어디까지인지 조문에 명확히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판례와 재판관의 해석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형법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억압하는 상황이 있었을지라도, 그에 대한 피해자의 의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해사실이 아니라 피해자가 어떠한 선택을 했는지가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죠.

그러나 피해자에게 성행위 등에 대해 직접 선택하고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항상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이번 글에서 중심으로 다루는 준강간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죠. 가해자의 직접적인 폭행과 협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체격 차이 혹은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두려움 등을 이유로 피해자는 범행 상황에서 제대로 된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기능해야 할 형법이 되려 피해자의 선택에 기대어 판결한다는 것은, 피해를 예방하고 가해를 처벌한다는 형법의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 준강간 고의에 대한 고찰

피해자의 변호를 맡은 IBS 법률사무소의 이영실 변호사님이 두 번째 발제를 맡아주셨습니다. 재판을 진행하면서 재판부가 사실관계를 어떻게 판단하였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셨으며, 법적인 해석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셨습니다.

 

    🔵 어째서 무죄가 되었나

재판부는 준강간의 고의를 인정하기 위해 두 가지 요건을 제시하였습니다.

    하나, 가해자가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인식할 것

    둘,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고자 하는 내심의 의사표시를 가진 채 가해자가 행동하였을 것

피해자가 만취 상태일 때 가해자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할 때,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게 준강간의 고의는 없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인지하고 강간하고자 하는 내심의 의사표시가 정말 없었을지 우리는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 준강간 피해자의 보호법익

형법은 누군가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법 아래에 보호받아야 할 법익을 지키고자 존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준강간이 인정되지 않고 있는 현재, 준강간죄의 보호법익이 무엇인지 짚어볼 필요성을 느낍니다.

준강간 피해자는 심신상실상태나 항거불능상태이므로, 원치 않는 성관계에 대해서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거부할 기회가 박탈된 상태의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 준강간죄의 보호법익인 것입니다.

 

 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의 4월 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 기자회견 사진 (출처 : 여성신문)

 

피해자가 콘돔을 사용하라고 부탁했다는 것, 그리고 가해자가 산 우유를 피해자가 마셨다는 것 등을 이유로 들어, 재판부는 가해자의 진술에 일관성과 신빙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피해자의 항거불능상태를 이용하여 범행할 의도가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판단 이면에는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적 시선이 존재합니다. ‘밤에 만취하여 남자와 스킨십을 하는 여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낙인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완전무결한 피해자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점도 존재합니다. 잠에서 깬 뒤 곧바로 신고하거나 탈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 가해자에게서 우유를 얻어마신 것 등에서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에 들어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항거불능상태에 존재했고, 그 상태에서는 가해자에게 명확히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피해자는 의식이 돌아온 뒤에도 상황을 파악하기를 우선하였고, 강간이라는 범행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가해자와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러한 피해자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법이 제대로 작동하였는지 재고할 때입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 기자단 틈의 은결 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