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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

[후기] 30기 성폭력상담원 기본교육을 마치며-통념에서 깨어나 나와 사회, 그리고 세상을 통찰하기 시작하다

2020. 6. 30 정년을 일 년 앞두고 인생 이모작을 설계하라는 교육 기간이 주워졌다. 어떤 교육을 찾아 들을까 고심하고 있던 중, 서울시청 앞 퀴어 축제 현장에서 성폭력반대 연극인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던 기획자를 우연히 만났다. 지난 봄에 한국여성의 전화 성폭력 전문 상담원 과정을 수료한 그는 나에게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원 교육도 곧 시작되니 참여해 보라고 권했다. 문화예술계의 미투 행동 이후 선배로서 무력함을 느끼고 있는 터라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기본교육 게시글이 올라오자마자 등록을 마쳤다. 그렇게 시작한 100시간의 교육. 교육생 중 유일하게 수료증을 못 받고 75시간을 이수하는데 그쳤지만 7월 한 달은 내게 세상에서 처음으로 들어보고, 가보고, 느낀 것이 너무나 많아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여성주의관점으로 삶을 보기 시작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교육을 모두 마친 이후에 남는 것은 단체 사진

 

첫 날, 이미경 소장의 강의부터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이미경 소장은 91년부터 반성폭력운동을 해왔는데 난 가부장적인 사회통념에 젖어 살았구나 싶었다. 밤늦게 다니지 마라, 야하게 화장하지 마라, 과하게 노출하지 마라 등등은 내가 늘 딸에게 하는 잔소리였고, 성폭력 기사를 보거나 주위에서 들으면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해라며 나름 객관적인 척했으나 그것은 자신을 설명할 언어가 없는 피해자보다 변명꺼리가 무수히 많은 가해자 언어로 사건을 해석한 것이었음을 교육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성폭력상담원 기본교육을 통해 젠더에 대한 인식도 비로소 하게 되었고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부터 개념, 그리고 쟁점을 비롯하여 성폭력 범죄 관계 법령, 국내 성폭력피해 지원 시스템, 사건 지원자로서의 통념 깨기, 수사 재판절차의 이해, 보호시설의 역할과 지원체계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법원 참관도 했고,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 열리는 페미시국광장도 가봤다. 아동성폭력에 친족 성폭력 등등 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너무도 몰랐구나, 내가 모르고 살았던 세상의 맥락과 서사가 읽혀지면서 그간에 내가 얼마나 습관과 타성, 그리고 편견에 지배되고 있었는지 실감하였다.

 

집중하고 있는 교육의 현장

32강까지 함께 한 강사들은 한결같이 소명의식으로 열정적으로 임했다. 쉼터 친구들을 오랫동안 보살핀 열림터 원장의 노고에 마음이 쓰이고, 성폭력 사건 지원에 관해서라면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전해준 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김미순 상임대표의 열정에 탄복했다. 권김현영과 정희진 두 스타강사의 명랑 유쾌 발랄한 강의도 인상 깊었다.

 

이번 교육에서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 있다면, ‘2차 피해이다. 피해자를 피해자로 보지 못하고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 나 또한 2차 가해를 하는데 동조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며 교육 이후 내 일상에서의 변화와 운동의 실천이 관건이겠지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루밍 당하지 않았었는지? 나는 내 몸을 과연 있는 그대로 존중했는지? 나는 과연 소수자들을 존중해 왔는지? 나와 다른 사람에게 혹시 폭력적 언사와 행동을 하지 않았었는지? 나를 넘어 성폭력 피해의 사회적 원인에 대한 질문을 되새기며 내 인생 그래프를 그려 보기도 했다.

 

교육과정 마지막 날 나는 굵은 팔뚝이 드러나는 민소매 블라우스를 입었다. 평소에는 집안에서만 팔뚝을 드러내곤 했는데 나름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는 시도였다. 앞으로 이런 나만의 시도는 일상에서 사부작 사부작 진행될 것이다.

 

권력으로 불편하거나 불의한 순간을 참지 않고 표현하기.

내담자와 상담자가 평등하듯이, 부모와 자식이 사람으로 평등하고, 상사와 부하가 인권으로서 평등하고 소수자도 존중받을 수 있도록 모든 위계와 성차별에 저항하기.

 

이런 다짐을 하게 한 한국성폭력상담소 기본교육과정 담당 활동가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누군가 교육생 단체채팅방에 올렸듯이 100시간의 교육 과정 준비를 위해 몇 배의 시간을 수고하셨으리라. 특히 소장님이 직접 쪄서 뜨끈한 솥째 전해준 포실포실한 수미감자 간식과 음료포가 떠나지 않도록 늘 채워준 교육생님의 손길에도 거듭 고마움을 전한다. 7월 한 달을 바친 한국성폭력상담소 30기 성폭력상담원 기본교육과정은 여성주의를 통해 일상 속에서 매사에, 누구나 민주주의를 실천해 자유평등한 문화를 만들라는 메시지로 남는다.

 

 

* 이글은 30기 성폭력전문상담원기본교육 교육생 오진이 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