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활동기]

2019년 여름, 상담소에서

by 진 (박진선)


"다가오는 여름부터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상담소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이 메일을 쓸 당시, 성폭력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저는, 성폭력피해생존자 상담 및 지원, 연구, 성문화운동 등 상담소의 활발한 활동을 보며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상담소 사무국으로부터 기쁜 소식으로 답변이 왔고, 6월 17일, 드디어 기대하던 상담소에서의 인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상담소에서는 매일 오전 10시, '아침나눔'을 하는데요, 사무실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어제와 오늘의 일정을 적고 활동가들이 모두 모여 어제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고, 오늘은 무엇을 할 예정인지 서로 자유롭게 공유하는 시간입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시작하는 새로운 날, 아침나눔에서 활동가분들과 처음 마주하고 인사를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긴장보다는 설레임이 더 컸던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상담소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함께하게 되면서, 아침나눔에서 제가 공유할 이야기들이 하나 둘 생기고, 이것이 점점 더 자연스러워졌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정말이지 금방, 상담소 인턴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11시 반에 진 인턴 활동 발표가 있어요!"
총 14주 동안의 인턴 기간이 끝나고, 지금까지 상담소에서 했던 활동들에 대해 상근활동가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활동 발표를 준비하면서 지금까지의 활동을 찬찬히 돌아보았는데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활동을 했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인턴 첫 3주 동안 로스쿨에서 실무수습을 온 친구들과 함께 했던 강간죄 관련 판례 자료 수집, 정리, 발표부터 성폭력 사건을 왜곡·은폐·축소한 검찰과 경찰을 규탄하는 집회인 페미시국광장 참여, 상담소가 주최한 행사에서의 한-영, 영-한 통역 업무, 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에서 출간된 반성폭력 이슈리포트에 실린 논문 영문 번역, '폭행∙협박'이 아닌 동의에 기반한 강간죄에서의 성적 '동의'와 강간죄 개정과 관련된 최근 해외 연구 동향 검토 작업,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마켓 F 상담소 부스 스태프 활동, 상담소로 오는 전화를 받고 담당 활동가에게 연결하거나 메모를 남기는 일, 상담소가 참여한 행사/회의/기자회견/재판에 참석 후 후기 작성 등 정말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데요, 특히, 강간죄 관련 판례를 읽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면서, 현행법상 강간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어떠한 문제점이 있고, 강간죄 개정이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외 연구 동향을 검토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면서 해외에서 성적 '동의'와 이에 기반한 강간죄 개정에 대해 어떠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논문 번역 업무를 하면서는 논문의 주제였던 성폭력역고소의 상업화와 ‘보복성 기획고소'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페미시국광장에 참여하면서는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검∙경이 어떠한 부정의를 행하고 있는지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그 부정의를 말하는 것의 필요성, 그리고 함께 연대하여 보다 큰 목소리로 부정의를 알리고, 이를 저지르는 이들을 고발하고, 비판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페미시국광장은 7월부터 9월까지 총 10차례 진행되었는데요, 5차 페미시국광장 같은 경우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준비하고 진행을 하였고, 저도 이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집회 사전준비 회의 과정에서 오갔던 이야기들이 어떻게 실체화 되는지, 또 집회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것이 (생각보다)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된 것 같아요. 

이 외에도, 상담소에서 인턴을 하며 다른 좋은 배움의 기회도 있었는데요, 7월 한 달 동안 상담소 B1층 이안젤라홀에서 30기 성폭력 상담원 기본교육이 있었고, 제가 특별히 관심 있는 주제의 강의들을 자유롭게 청강할 수 있었답니다.

상담소에서 활동하면서, 궁금한 것들이 많이 생기곤 했는데, 업무 관련해서 말고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활동가분들께 물어보곤 하였고, 그때마다 친절하게 설명을 잘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또, 참여하는 업무 관련 회의뿐만 아니라 상담소의 다른 활동과 관련해서도 작은 것이라도 저의 의견을 물어봐 주시고 반영을 해 주시기도 하여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진이 할래요?", "진이 해볼래요?"라며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것을 권해주셔서, 제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저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함께' 일하는 우리 상담소의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맛있는 점심 식사, 아침나눔 이후, 점심 이후의 커피 타임, 그리고 하늘이 예쁜 날 함께했던 합정동 산책과 같은 소소한 행복의 시간들도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상담소에서 인턴을 하기를 참 잘했다고, 인턴을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분명,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고, 얻어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뜨거운 여름을 반성폭력 운동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상담소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즐거웠습니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성폭력피해생존자를 돕고,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해서, 법과 제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서의 성폭력 통념을 깨부수기 위해서 활동하시는 멋지고 따뜻한 활동가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곧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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