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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3가지 행동

분노하고 욕하고 그냥 넘어갈텐가
'나영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3가지 행동
水 (news)

 


나는 9년간 친아빠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친아빠는 감옥에서 7년을 살고 나왔다. 출소일이 다가올 무렵 아빠란 사람이 내 등에 칼을 꽂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 살아온 15년은 9년 동안 성폭력을 당했던 시간에 버금가게 힘들고, 지긋지긋했다.  

나영이에게 "심한 성폭력사건"의 생존자로서 꿋꿋하게 사회에 잘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는 언니로서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사실 나는 할 말이 없다. 나영이가 지금 겪은 사건들도 힘들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영이가 가슴 설레는 사랑을 만나게 되었을 때 알콩달콩 사랑하며 살게 되는 세상을 위해서. 화장실을 갈 때마다, 샤워를 할 때마다 자신의 몸에 남은 흔적으로 그 사건이 생각날 때마다 조금은 아픔과 두려움이 옅어지도록 우리가 해줄 일들을 고민해보았다. 미래의 나영이가 혼자 경험하게 될 아프고, 외로운 순간들을 떠올리며 우리가 해줄 것들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9살 나영이가 사춘기를 지나고 나영씨가 되었을 때 조금은 편안하게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영이가 아닌 우리들에게 실천할 수 있는 3가지 행동을 부탁하고 싶다. 

첫째, '나영이 사건'을 읽은 후 소름을 경험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이 사건에서도 "성적"인 어떤 것이 느껴졌는가? 그 사건을 보면서 성적수치심 같은 것이 들었는가? 일반적으로 성폭력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이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고, 잘 극복한 이후에도 당당하게 이야기하기 힘든 것은 '성적수치심' 때문이다. 성폭력에서 "폭력"보다 "성"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 스스로도 성적수치심을 느끼지 않아야겠지만, 사회적 시선도 '성적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바뀌어간다면 미래의 나영씨는 불필요한 수치심 없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영이 사건'과 같이 참혹하지 않더라도, 반항을 심하게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이 '성'적 관계를 한 것은 아니다. 성폭력피해생존자들에게서 '성적수치심'이라는 짐을 덜어주는 방법은 좀 더 편안한 관심과 애정, 지지이다.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크고 작은 성폭력피해를 입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때 온 마음을 집중해주고, 듣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아주면 좋겠다. 힘든 얘기해주어 고맙다고 손 한번 꼭 잡아주고, 소문으로 돌리지 않는 것. 이런 작은 실천을 해보겠다고 마음 먹어주면 좋겠다. 

둘째, 가해자가 심신미약으로 인정받아 12년으로 감형된 이유인 만취 상태. 이것은 술 마시고 저지르는 실수들에 너그러운 우리네 문화가 만들어낸 감형이 아닌가 싶다. 단순히 술 좀 덜 마시자 이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영이 사건을 접하고 분노하고 있는 우리들도 술 좀 취했다고 여직원의 허리와 어깨를 더듬고, 성적 농담을 '진한 농담' 정도로 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주변에 있을 수도 있지만 나 자신은 어떤지도 곰곰이 살펴볼 일이다. '술 취해서 한 말인데 뭐, 필름 완전 끊겨서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내가 그랬어? 허허~~미안 미안'으로 넘기고, 넘겨주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술 마시고 하는 실수들에 조금은 엄격해지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그렇게 되어간다면 적어도 "만취상태=심신미약 감형 땅땅땅!!" 이런 결론은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나영이에게만 너무 관심을 쏟지 말자. 세상에는 나영이 보다 더한 피해를 겪고도 숨죽이고, 조용히 혼자 고통당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또 앞으로 제2, 제3의 나영이 사건이 없으리란 보장도 없다. 

나영이 사건으로 끓어오른 온 국민의 분노가 단순히 분노에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가해자를 향한 욕설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나영이를 불쌍히 여기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한 번에 부르르 쏟아내고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적은 돈이라도 성폭력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내보자. 각 지역마다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을 지원하는 상담소들이 있다. 돈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가고, 마음 가는 곳에 돈도 가는 법이다. 매달 통장에서 그 돈이 빠져나가는 날만이라도 이 땅의 나영이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해주면 어떨까? 

우리의 분노가 미래의 나영씨와 이 땅의 나영이들이 조금은 편안하게 치유의 길을 걸어가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실제적 변화의 길을 만들어가는 힘으로 승화되길 바란다. 왜냐하면 나영이는 오늘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영씨가 되어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www.ohmynews.com 에 게재되었습니다. 글쓴이 '水'는 본 상담소 소식지 <나눔터>에 '생존자의 이야기' 수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www.sisters.or.kr > 자료실 > 나눔터에서 연재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