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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낙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낙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세요?                   

여러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2월 3일 "낙태, 불편한 진술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주제로 홍일표 의원실에서 주최하는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했습니다. 저는 ‘생명보호,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원고를 발표했는데, 내용은 진정 생명보호를 위해서는 사회 인프라가 마련되어야지, 불법낙태 단속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낙태 단속은 결국 낙태를 음성화하여 여성들의 건강을 해치고 심하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결과를 야기할 뿐 결코 대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낙태할 권리는 출산할 권리, 피임할 권리와 함께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날 토론회에서 요즘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진오비 의사회의 대변인인 최안나 원장이 첫 번째로 발표하였습니다. 최 원장은 불법낙태의 실태, 낙태한 태아의 사진, 낙태한 잔유물의 처리 실태 등을 언급하며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객석에 앉아있던 진오비 소속의 한 의사는 "낙태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열심히 설득해서 애를 낳게 한 산모한테는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맞는 것이냐?"며 질문을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참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낙태가 손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힘든 일이면 자신이 낙태를 한 병원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고, 낙태시술을 해준 의사에게는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기도 어렵겠습까? 그만큼 낙태는 자신과 가족, 앞으로 태어나게 될 아이의 상황 등을 모두 고려한 끝에 내리는 아주 힘겨운 결정입니다.

저는 의사는 아니지만, 의사에게도 낙태에 관한 상담을 하고, 결정과정에 함께 하고, 마지막으로 시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쉽고 행복한 일만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의료행위에는 그렇지 않은 어려운 일도 많이 있겠지요. 아프고 병든 사람들을 만나고, 치료와 완쾌를 위해 쉽지 않은 도전과 시도도 해야하는 힘겨운 직업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토론자로 참석했던 낙태반대운동연합의 김현철 부회장은 태아모양으로 만든 인형을 직접 들고 나와 보여주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쉽게 죽일 수 있느냐?”며 태아와 인간은 동일한 생명체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수 십 년 전에 뱃속의 아이를 낙태하기로 마음먹었다가 마지막에 생각을 바꾸신 어머니 덕분에 자신이 오늘 이 자리에 있다는 말씀도 덧붙이더군요.

마음 속에 참으로 많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김현철 부회장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낙태를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의 순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결정 이후에 어머니는 열 달 동안 아이를 뱃속에서 키우셨고, 출산한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육아노동에 쏟아부으셨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뭐 며칠 밤을 새워서 이야기하기에도 부족하겠지요. 수정란이 의젓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어머니와 가족들의 노동이,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교육과 지원 등 갖가지 투자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성인으로서의 존재감을 수정란이 만들어져 자궁에 착상된 순간으로 환원해서 이야기한다면 그건 출산, 육아, 교육, 재교육 등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정란과 인간은 동일한 존재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비혼모들을 위한 지원책이 너무나도 미비한 우리의 사회제도는 정말 부끄러운 것입니다. 십대들이 퇴학을 결심하지 않고는 출산할 수 없다는 사실도 우리 사회의 미개한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죠. OECD국가 중 여성권한척도(GEM)가 높은 사회일수록,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출산율도 높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여성들의 교육수준은 높은데 권한은 낮은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아주 낮은 초저출산 국가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를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떤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과제를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서 불법 낙태 단속 운운하는 것은 정말이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태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태아의 생명권과 인간의 생명권을 동등하게 보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법에서도 살인죄와 낙태죄는 그 죄값이 동등하지 않습니다.) 이를 혼동하면 신중한 낙태 선택마저 부정하는 잘못된 결과를 낳게 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