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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성(性)에 관한 단상(斷想)



 상담소에는 매년 한 권의 책이 배달되어 옵니다. 바로 우리 상담소의 이사장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홍순기 님이 동인으로 소속되어 있는 의사동인 '박달회'의 수필집입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의사들이 모여 1973년 발족된 '박달회'의 동인지는 올해로 제36집을 펴냈고, 이사장 홍순기 님도 이 동인지에 총 다섯 편의 수필을 실었습니다. 그 중,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좋은 글 한 편을 나눕니다.

   


성(性)에 관한 단상(斷想)


청담마리 산부인과 원장 / 본 상담소 이사장 홍순기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우주의 기원을 단 한 번의 대사건, 약 135억만년 전 엄청나게 뜨겁고 무한정의 밀도를 가진 어느 한 점에서 시작된 대폭발(Big Bang)로 모든 것이 생겨났다고 지적한다. 대폭발로 생겨난 무거운 원소들의 일부는 생물체의 몸을 이루게 되는데 그 예로 탄소의 경우 대폭발 훨씬 이후에 대폭발에서 기원된 별들에서 일어났던 자연적 핵폭발로 생긴 가벼운 원소들의 중합체인 것이다.

   지구의 역사를 일주일로 환산하면 하루는 대략 6억6천만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월요일 0시에 지구가 단단한 구체로 출현하면서 우리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가정할 때, 월요일과 화요일과 그리고 수요일 오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수요일 정오 정도에 박테리아의 형태로 생명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목요일에서 일요일 오전까지 박테리아가 증식하고 새로운 생명 형태로 발전한다. 살아있는 개체적 존재로서의 종결을 의미하는 죽음은 약 10억만년 전(토요일 오전 11시 정도)에 시작된 유성생식 생물의 진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요일 오후 4시 쯤 공룡이 나타났다가 5시간 뒤에 사라지는 셈이다. 일요일 자정 3분 전에 인류가 출현하고 자정 15초 전에 최초의 도시들이 생겨난다. 자정 2.63초 전이 예수 탄생인 서기 1년이 된다. 만일 어떤 이가 76세 정도까지 산다면 이 계산에서 10분의 1초에 해당된다.

 우주의 기원과 천문학적인 숫자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이다.

 유한한 삶 속에서 나름 치열하게 꼼지락대는 존재의 가벼움이 참을 수 없고 사후(死後)의 존재가 궁금하여 한번 죽어보고 싶었던 중학교 철없던 시절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성이 없는 핵을 가진 세포들은 무한한 분열을 하는 불멸의 존재이다. 일주일 지구의 수요일 정오부터 토요일 오전 11시 정도까지의 시간동안 이 불멸의 생명체는 다양한 환경을 가진 지구의 생태계에서 박테리아 같은 원핵생물들로서 유전자 흡수(섭식, 감염)를 통하여 각박한 환경에도 생존할 수 있도록 진화되어 갔다. 지구 격변기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유전물질의 이동 뿐 아니라 제공자와 수용자라고 부를 수 있는 두 근원으로부터 받은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바로 유전적 재조합이 성(性)의 근원이다. 드디어 감수 분열을 통한 성세포와 성세포 결합(수정)을 통한 유성생물이 기원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본 욕망에 식욕과 성욕이 있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오랜 생명의 기원에서 유래한 것일지도 모른다.

 원핵생물은 몸체가 단순하고 여러 방법으로 자기재생이 용이하여 무한한 번식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다. 반면에 진화된 유성생물은 신체가 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자가 수선이나 재생 기능이 축소된다. 이러한 유성생물이 완전한 재생을 위하여 반드시 성을 수행하여 별개의 개체를 번식하여야 하며, 이후 생존력이 떨어진 의식적 개체로서의 모체 자신은 필연적으로 죽어야만 하는 운명을 받아들어야 했다. 대신 다양한 생물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연대의 끝자락에 인류도 생겨나게 되는 기원이라고 할까. 성(性)을 받아들이면서 영생을 반납하게 된 것이라고도 하겠다. 그리하여 영생과 맞바꾸게 된 성(性)과 죽음의 역사는 7억년 정도가 되는 것이다. 에로스 타나토스...

 이렇게 과학적 결과를 종합하여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서 본 성(性)을 지식으로서의 이해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기에는 너무 힘겹다. 그래도 일주일 지구의 마지막 3분 전에 출현한 인류인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성(性)에 이르기까지 사고(思考)의 여정을 계속해 본다.

사냥이나 채집이 유리한 신체적 조건을 가지며 종족번식의 본능에 충실한 남자는 되도록 많은 여자에게 자신의 씨를 퍼뜨리려 하고, 적어도 임신 기간 동안 남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역시 종족번식을 위해 인간의 아기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여타 동물에 비해 긴 기간 모성본능을 발휘하여야 하는 여자는 남자를 곁에 잡아두기 위해 섹스어필해야 하는 성역할을 지극히 본원적 행동양식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씨의 주인이 모호한 상태에서도 출산을 통해 종족번식의 주체임이 자명한 여자를 중심으로 하여 남자들이 종족번식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모계사회의 흔적도 있고 소아시아에 있었다는 전쟁으로도 남자들을 압도하는 여전사족 아마조네스의 전설도 있다.

 우리는 기록이나 근거로 역사적 진실을 추정하지만, 역사는 남자의 이야기(his story, history)인 승자의 기록일 뿐, 수많은 문명이 흥망성쇠를 겪으면서 기록이 없는 또는 없어진 문명 속의 이야기는 오로지 상상력의 여백으로 남겨놓을 수밖에 없다. 모르긴 몰라도 용맹하고 지혜로운 여자들의 이야기는 축소되거나 왜곡되어 기록된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사실만을 남기고 형용사적 기술을 모두 발라낸 후 시대적 재추정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튼 체감 가능한 역사의 한도 내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는 남자보다 하등(下等)한 존재로 단정되어 왔다. 불과 130여 년 전만 하여도 비숍이라는 독일의 해부학자는 여자의 뇌는 남자의 뇌보다 작아서 과학을 공부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진지한 주장을 하기도 하였고 남자들이 공부하는 강의실에 여자가 함께 있는 것은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정식으로 항의하는 학자 집단도 있었다. 치열한 투쟁을 통해 여자들은 차츰 권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물론 남녀차별 정도의 차이는 시대적으로도 달랐고 동시대에도 지역적 문화적으로 다르다.

 더욱 근접한 시각으로 좁혀 본다.

 국제경제포럼이 조사한 남녀평등지수가 세계 134개국 중 115위라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집중된 서울, 이곳에는 고학력이 될수록 시집가기 어려워진다는 자가당착에 빠진 여자들과 남자들이 선심을 써주지 않아 명절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며느리들이 살고 있다.

 젊은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하면 치마를 짧게 입고 다니니 그런 일을 당했다며 혀를 끌끌 차는 이웃들이 살고, 남자가 만취상태에서 강간을 하여도 술의 탓으로 돌려 형량을 낮추어 주는 판사들이 살고 있다.

 어릴 적 시골에 갔을 때 밤 마당 수돗가에서 양치질을 하다가 가글을 하려고 무심코 고개를 젖혔다. 바로 눈앞에 밤하늘 가득한 큰 별들이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아 깜짝 놀라 양칫물을 꿀꺽 삼켰던 기억이 있다. 흔히 도시에서 밤하늘의 별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공해 탓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서울의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공해 때문이 아니다. 주변의 밝은 불빛으로 인해 동공이 축소된 때문이다. 서울의 밤하늘이라고 시골 밤하늘을 가득 채웠던 별들이 없을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진실을 보지 못함은 진실이 가려져서가 아니라 나의 통찰력이 발휘되지 못함 때문인 것이다.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본 것을 믿으며,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이며 때론 희생을 감수하는 혁명이다.

 화나지만 당분간 양성평등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일주일 지구의 몇 초 동안은. 하지만 중얼거리면서라도 말하고 꼼지락 거리면서라도 행동하는 것들이 결국은 진화를 이룬다. 일주일 지구의 10분의 1초도 안 되는 동안의 세상에 들리지도 않을 작은 외침이더라도 말이다. 다시 월요일 0시로 시작하는 새로운 일주일 지구의 여자들의 공평한 자유를 위하여, 나는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다’고 했던 김수영 시인처럼 밤새 끙끙거리기라도 해본다.   



 

 

의사동인 박달회 수필집 제36집

<여백과 침묵>

박달회 지음 / 도서출판 운향 / 2009년 12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