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감각을 다시 경험하게 한다.

실수로 종이에 손을 베었던 순간을 떠올리는 순간,
그 기분 나쁜 통증이 다시 손 끝에서 느껴지는 것 처럼.

그러므로 누구나 힘들었던 기억은 깊이 묻어두려고 한다.


그. 러. 나.

덮어두려고 해도 순간순간 떠오르는 기억들은 어찌할 수 없다.

그 기억들은 너무나 파편화되어있다. - 가해자의 손, 입 가해자가 한 말, 짤막하게 끊어지는 가해의 장면들.
종종 감각적인 부분만이 기억나기도 한다. -몸에서 느꼈던 끔찍했던 느낌, 경직, 땀 냄새, 뭔지 알 수 없는 장면.
때로는 가해장면이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그 주변 환경만 기억날 수도 있다.  - 째깍거리는 시계의 초침소리, 창 밖으로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오렌지색 가로등 불빛...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 고통을 잊지 못하고 아직까지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지긋지긋해지고,
나를 이렇게 만든 세상이 원망스럽고,
이렇게 힘들어하는 나를 충분히 이해해주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
원망이 느껴지면서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그럴때는 다시 깊이 묻어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수 있다.

하지만 부정당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더 발버둥치듯,
깊이 묻어두려고 하는 기억들은
내가 원하지 않는 때에 불쑥 나타나 자신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당장 고통이 사라지도록 할 수 있는
마법 같은 방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갈 수 있는
방법 같지도 않은 방법만이 있을 뿐.

1. 기억이 떠오르는 건 당신이 원치 않은 일을 겪었고, 아직도 그것이 불편한 채로 남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자연스러운거라고.

2. 이야기를 만들어 본다.
   믿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도 좋고 혼자서 글을 써 봐도 좋다.
   이야기를 만들 수 없을 정도로 기억이 희미하고 조각나 있다면 기억이 더 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조바심 내지말고 천천히 해 나간다.

3. 기도한다(특정 종교와는 상관없는 기도).
   말도 안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성폭력을 당한 것처럼 여기에서 회복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어려움도
    당신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당신에게 주어진 일이다.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하게 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보다 초월적인 존재에게 기댄다고 생각하면 아주 조금은 위안이 될 것이다.



p.s.
 이따위 방법들은 나에게 아무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에 화가 나거나,
 나는 왜 이렇게 못하고 계속 힘들어만 하고 있는지 자책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위의 내용은 그냥 잊어버려도 좋다.
 '아직 준비가 안됐다'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다.
 이 글을 보고 화 내지도 말고, 우울해 하지도 말길.


 

Posted by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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