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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대해서

성폭력 가해자를 남편으로 둔 '아내'의 이야기

상담소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사람이 성폭력피해 당사자인 피해자이고 다음이 피해자의 가족 및 도움을 주고자 하는 주변인이다. 그리고 끝으로 가끔, 정말 가끔씩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손님이 있는데, 이들은 바로 ‘가해자의 아내’이다.

얼마 전 작은 목소리로 ‘이어진 선생님’을 찾는 한 여성이 상담소 문을 들어섰다. 면담 약속이 없던 날이었기에 조심스레 다가서니 상담을 요청한다고 했다. 그리고 천천히 본인을 소개했다. 본인은 내가 사건지원하고 있는 A사건 가해자의 아내로 상담자인 내가 자초지종을 잘 모르고 피해자를 지원 하는 것 같아 진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어렵게 상담소를 방문했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도 상담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으로, 상담자가 한 쪽의 말만 듣고 누군가의 입장에 선다는 건 사리에 맞지 않은 일인 만큼 본인의 이야기를 잘 듣고 현재 상황을 판단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현재 A사건 가해자인 남편이 매우 힘들어 하고 있고, 자신도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어렵게 토로했다.

나는 늘 이런 상황이 되면 안쓰러운 마음, 안타까운 마음, 화나는 마음 여러 가지가 든다. 이 먼 곳까지 본인이 푸대접 받을 것을 알면서도 어렵게 찾아온 그 걸음이 안쓰럽고, 가해자인 남편을 믿을 수밖에 없는 그 세월에 안타깝고, 그러면서도 본인의 남편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편협함과 무지함이 화가 난다.

그 아내 분께 나는 정중하게 말했다. 본인의 믿음대로 남편이 가해자가 아닐 수도 있다. 본인이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남편의 인생을 알고, 남편을 믿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내가 상담한 피해자를 믿는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피해자의 인생을 이해하고, 피해자를 믿고 신뢰한다. 나는 당신을 상담할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남편의 결백을 증명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결백은 법정에서 주장하시라는 이야기를 끝으로 헤어졌다.

아내 분은 그러고도 두 번 더 전화가 왔고, 이러한 행동이 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난 이후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통화에서 그 머뭇머뭇 홧기어린 목소리로, 본인의 행동이 남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무례하게 굴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는 내 맘도 참 멋쩍게 만들었다.

대부분 성폭력 가해자인 남편은 아내에게 억울함과 무고함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억울함과 무고함을 주장하지 않는

건 가해를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를 남편으로 둔 아내는 본인의 미적거리는 마음, 화나는 마음, 그 어느 것도 누구에게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순간 남편을 가해자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피해자에게, 가해자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해석하고 수용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성폭력 가해자를 남편으로 둔 ‘아내’도 마찬가지이다. 이 과정에서 남편이 성폭력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남편을 져버리는 것이 아니고, 가해자임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대개 그 깨달음은 늦다. 하지만 늦더라도 꼭 필요한 깨달음이라 생각된다. ‘아내’자신이 그 상황을 견뎌내고, 가해자와 관계 맺기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이어진 활동가-

*위의 삽화는 <봉봉>님이 재능 기부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