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이야기 이다. 이 이야기는 내게도, A씨에게도 정리하는데 시간이 꽤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A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상담을 하면서이다. A씨는 어릴때부터 가해자인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면서 성폭력피해를 견디어 냈다. 성인이 되고, 돈을 벌게 될 때까지. 딱 그만큼을 잘 견딘 A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그때의 결심처럼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가해자가 생명이 위독하니 마지막 임종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A씨는 고민했다. 무척, 여러 번, 다양한 방향으로 고민했다. 하지만 가해자를 보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을 병원에 전했다. 병원의 반응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너무한다.’ 라는 반응이었다. 세상 모두에게 이해를 바랄 수는 없기에 넘어갔다. 그런데 그 얼마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장례를 치르라는 것이었다.
장례. 너무나 생각지 못한 문제였다. 가해자를 고소하고 벌줄 생각은 많이 했었는데, 가해자가 죽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도 많았는데, 실제 가해자가 죽고, 그 시신을 처리하는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A씨도 나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가해자의 죽음을 피해자인 A씨가 거둘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장례가 끝난 후에도 난 쉽게 마음이 펴지지 않았다. 그리고 종종 이 생각이 날 때 눈물이 났었다. 살아서도, 죽을 때도 남긴 돈 한 푼 없이 끝까지 A씨를 괴롭히는 가해자가 밉기도 했고, 마지막 가는 길에 달랑 두 사람만 찾은 그 장례가 서글프기도 했다.
나는 생각한다. 성폭력 가해자인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을까? 「장사등에 관한 법률」을 뒤지고, 경찰에, 동사무소에 문의를 해봐도 지금의 답은 ‘장사는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피해자 A씨는 세상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을 위의 과정을 겪었으니,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나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세상 누구도 모를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달라는 당부를 했다. 그래서 혹시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장례문제를 ‘예상’ 하고 ‘준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이어진 활동가-
*위의 삽화는 ‘봉봉’님이 재능기부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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