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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대해서

친족성폭력가해자인 아빠가 결혼을 앞둔 딸에게


 

지난 일요일 A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A는 내가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인 <열림터>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게 되었다. 그때 A는 중학생이었고, 지금도 그때처럼 더음더음 언제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장난을 건다. “쌤이 뭐 이래요. 이것도 못해요?!” 하면서 나의 여러 실수들을 타박하기도 했다. A는 화끈하게 대답하는 법은 잘 없었지만, 그렇다고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도 않았다. 아니 억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조금 시간이 들더라도 A는 원하는 것을 꼭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A는 열림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퇴소를 하게 되었다.

A가 퇴소를 한 이후에도 종종 연락을 하곤 했었다. A는 아버지가 성폭력 가해자이다. A는 아버지를 피해 쉼터로 왔지만, 쉼터 퇴소 이후 다시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A가 쉼터에 있는 동안 형을 살고 나왔고, 이후 좋은 아버지가 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좋은 아버지이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A의 결혼식장을 가기까지 내심 많은 생각을 했었다. 가해자인 아버지가 같이 올까? 남편에게 아버지를 무어라 이야기 했을까? 남편에게 성폭력 피해사실을 이야기 했을까? 혹시 했다면 남편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남편에게 꼭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되는데 혹 하지 않았다고 혼자 고민하고 있지는 않을까? 당연히 남편과 동시 입장을 하겠지? 혹시 아버지랍시고 자신이 같이 입장 하겠다고 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이런 질문은 A와 같이 아버지를 가해자로 둔 친구들이 결혼을 앞두고 푸념처럼 했던 고민들이었다. 그 고민, 생각들을 나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A의 아버지를 결혼식장에서 처음 보았다.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 여느 아버지와 다름  없는 모습으로 A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딸을 결혼시키는 아버지의 이유도 없고, 알 수도 없는 늠름함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는 모습이었다. A와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서서 사위에게 딸의 손을 건네며, 귓속말로 당부의 이야기를 하는 그의 입술을 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A가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했으리라 믿는다. A는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 몇 분의 결혼식을 어떻게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기고 하다. 이해심 없는 가해자를 일일이 설득하고 싸우면서 지리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그 마음도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내 마음이다.

A가 정말 결혼식에 아버지를 초대하고 싶었을까?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혼식이라는 것이 결국 남에게 ‘평범한 남과 같음’을 보여주는 의식인지라 아버지를 뺄 수 없는 마음을 짐작할 뿐이다. A는 평소 평범함을 바랬다. 그 평범함이 결혼식의 사진 한 컷으로 남았다. 나는 그 가장된 평범함에 얽힌 슬픔과 연민에 목 안이 쓰렸다.

-이어진 활동가-

*본 삽화는 봉봉 님이 재능 기부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