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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착한 글래머’와 ‘꿀벅지’, 그리고 성추행




정말 여성연예인이 “또 죽어야” 끝날 일인가?

얼마 전 10대 연예인이 성추행을 당한 일로 언론이 시끄러웠다. 새벽 2시쯤 소속사 대표가 자신의 승용차에서 "오늘 함께 모텔에 가자"며 10대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속사 대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며 발뺌하고 있다. 당사자인 10대 연예인은 이 일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최근 자살기도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10대 연예인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남긴 것처럼 정말 또 여성연예인이 죽어야 끝날 일인가 되묻고 싶다.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고(故) 장자연 사건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자연씨는 소속사 대표로부터 집요하게 성접대를 강요받으며 폭행까지 당하는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이를 참다못한 장자연씨는 자신의 억울함과 절절한 고통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장자연씨가 목숨을 걸고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보람도 없이, 검찰은 장자연에게 성접대를 강요한 유력인사들을 불기소처분했으며 소속사대표인 김씨에게도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가벼운 처벌만을 내렸다.

 

 




착한 글래머’와 ‘꿀벅지’, 그리고 성추행

 

이 10대 연예인은 최근 ‘착한 글래머’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녀는 모 케이블방송에 출연하여 “10대야 말로 벗기에 가장 좋은 나이다”, “요즘 나이 든 모델들이 비키니 화보를 찍는데 역겹다”라고 튀는 발언을 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녀가 소속사에서 시킨 것이지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빠른 속도로 언론을 타고 퍼져나갔다. 이 노이즈마케팅으로 인해 그녀는 성적으로 개방적인 ‘착한 글래머’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착한 글래머’의 이미지는 소속사와 사실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일 만큼 그녀를 괴롭히는 족쇄이기도 했다.

 

그녀를 둘러싼 논란들은 쉽게 ‘꿀벅지’로 유명해진 유이를 떠올리게 한다. 유이는 ‘꿀벅지’라는 성적 대상으로 호명되면서 쉽게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한 예능프로를 통해 유이는 무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한 남성팬으로부터 바로 그 ‘꿀벅지’를 만지는 성추행을 당해서 불쾌했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유이가 당한 성추행은 ‘꿀벅지’만큼 많이 회자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이는 성적 대상으로 재현되는 여성연예인들이 이로 인해 인기를 얻기도 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취약한 지위에 놓인다는 것이다.

 

‘착한 글래머’와 ‘꿀벅지’로 ‘성적 대상’으로 재현되면서 인기를 얻은 여성연예인들이 다시금 성폭력의 피해자로 등장하는 현실을 보면서 여러모로 뒷맛이 씁쓸하다. 유이는 최근 소주광고에서 ‘쿨한 여자’ 이미지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많은 경우 이 ‘쿨함’은 남성들에게는 그저 ‘헤픈 여자’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섹시한 여자’는 ‘성적으로 쿨한/개방적인 여자’이고, 따라서 아무런 동의 없이 성적 행동을 해도 성폭력이 아닐 것이라고 착각하는 남성들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착각은 단지 착각일 뿐’이라는 것은 불조심 표어마냥 정말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소위 ‘섹시한 여자’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또다시 여성에게 ‘정숙한 여성’되기를 강요하는 보수적인 성규범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10대를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어른들

 

최근 아동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온 국가와 사회가 ‘아동 지키기’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각종 호신용품이 폭발적으로 판매되고, 귀가길 아이들을 마중나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아동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도 TV에 등장하는 10대 연예인들만 이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쏟아져 나오는 걸그룹들의 전성기 속에서 10대 연예인들은 성인처럼 분장하고 성인들보다 더 섹시한 성적 존재로서 등장한다. 그러나 브라운관 속에서 화려한 모습 뒤에는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면서, 자신의 사생활을 감시당하고, 충분히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피곤한 인생들이 있다. ‘힘없는 10대’라는 점을 악용하여 성폭력을 가하고 누드 촬영을 강요하는 소속사 대표들의 악행들이 기사화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실은 크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 어른들은 TV만 들여다보면서 10대 연예인들의 화려한 모습에만 열광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대 뒤의 ‘리얼 인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 영화 <해리 포터>의 주연배우들이 그동안 계약상 위험한 스포츠로 분류되어 ‘태닝과 스키’를 못했는데 이제 맘껏 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인터뷰를 보고, 속이 쓰렸던 것은 나만의 일인가? <해리 포터>의 주연배우들처럼 개인교사를 붙여서 교육을 시키지는 못해도, 적어도 성폭력 당하지 않을 권리, 착취당하지 않을 권리 등 10대 연예인들에게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