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부터 여성가족부는 여성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상담소와 보호시설에 정부의 행정시스템을 이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2008년 '새올행정시스템'으로 출발한 이 시스템이 2010년 1월 4일부터 본격 운영되고 있는 보건복지가족부의 '행복e음'(사회복지통합관리망)이다. 여기에는 쉼터 입소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입·퇴소일을 기록해야 한다.
전자정부 시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이 사업은, 정보인권에 대한 정부의 낮은 이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개인의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민감한 정보일수록 집적/유통/유출이 쉬운 전자방식을 택해서는 안되는 것이 '글로벌한' 기준에서 상식이다.
상담소나 쉼터를 찾는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주거지 조차 안전하지 못해 피난처가 필요한 여성들, 자신의 피해를 어디에도 믿고 보고하기 어려워 비밀보장을 약속하는 상담소를 찾는 여성들에게 개인정보를 모두 전산시스템에 입력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이 사회가 지원을 빌미로 행하는 폭력에 다름 아니다.
실례로 얼마전 상담소에는 3년 전 자신을 성폭력가해자로 고소한 딸을 찾는 가해자가 불쑥 찾아왔었다. 가해자는 이미 친권이 박탁된 상태로 피해자의 주거지를 서류로 찾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지만 당당하게 피해자의 초본을 내밀었다. 이처럼 한 개인의 정보유출은 민간 수준에서 위험수위에 달해 있다. 개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휴대전화번호, 주거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부의 정보보호 정책 또한 민간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구청 공무원이 심부름센터 운영자에게 주민번호와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건당 50만원 안팎의 돈을 받아 챙긴 일이 보도되었다. 약 3년간 300여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는데, 적발되지 않은 건수를 포함한다면 이 수는 어마어마하다 할 것이다.
정부는 이중수급 방지, 투명한 재정 운영 등을 이유로 내세워 전산시스템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우리 단체들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에 왜 상담소를 열었고, 왜 쉼터를 개설했는가? 행정편의를 위해서 피해자의 개인정보 집적쯤은 아무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투명한 재정 운영,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반드시 전자 시스템이 해결책은 아니다. 지금까지 해온 문서보고 방식을 통해서도 올바른 재정 운용은 가능하다. 여성폭력피해자 지원업무가 행정 편의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 상담소를 비롯한 몇몇 여성단체들은 지난 12월 9일 여성가족부의 관련 국장면담 자리에서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해야 하는 긴박한 사정을 호소했다. 얼마 후, 여성가족부에서는 '여성복지시설 관련 국비지원시설 <행복 e음>사용 일부 변경사항을 통보해왔다. 피해자가 본인의 개인정보를 종이서류로 작성하여 시군구에 제출하는 방법과 '사회복지시설정보시스템'을 통해 신청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것이다. 이것으로 지난 몇 년동안 계속해서 정부와 싸워왔단 피해자 정보 집적 문제 해결의 출발점에 서기는 했지만, 피해자의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한 언제든 다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늘 마음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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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피해여성 오세요, 단 주민번호도 까세요(오마이뉴스, 201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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