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를 말하다

[백해무익한 성폭력 예방 10계명?!] ① 검사가 알려주는 성폭력 예방 10계명?


법무부에서는 법무부 홈페이지의 법무메거진을 통해 '성폭력을 예방하는10계명'을 발표하였습니다(관련 글 보러가기). 법무매거진에 따르면 이 자료는 서울 서부지방검찰청 ‘성폭력범죄대응센터’에서 2010년 한 해 동안 법원에 재판을 청구한 성폭력 사건 110건을 분석한 자료라고 하네요. 하지만 상담소 활동가들은 이 10계명을 읽고 결코 환영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법무부에서 발표한 성폭력 예방 10계명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반응들이 나왔던 걸까요? 

 

검사가 알려주는 성폭력 예방 10계명 이라고?  

어서 죄송합니다.
신경 못써서 죄송해요
아무리 그래도 정말 이러시깁니까.

2월 17일에 법무부 홈페이지 법무매거진에 올라온 '검사가 알려주는 성폭력 예방 10계명'을 읽고 흠칫 놀랐습니다.
이런 리스트업 자료들이 일종의 친절인 것은 알지만
이것이 성폭력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자꾸만 왜곡하는 것 같아 상담소는 당황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사 기관에 고소장을 접수하는 성폭력 피해자는 아주 소수이고, 그 중에서도 일부만이 기소가 된다는 건 잘 알고 계시는 줄 알았어요.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보복, 판결 결과의 불확실함 등을 이유로 고소를 망설이죠. 그렇게 고소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불기소 결과가 나면 너무도 억울하게 무고죄나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수의 사례만을 갖고 '성폭력 발생의 원칙'인냥 발표하시는건 참 아니잖아요.
정말 별로인거잖아요.

2010년 여성가족부 성폭력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한국사회의 성폭력 사건(강간과 강간미수만) 고소율은 12.3%이고 그 중 일부만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다는 점에서 봤을 때, 법무부가 ‘성폭력 예방 십계명’으로 110개의 사례를 추려 발표하신 것은 정말 무수히 많은 성폭력 사건들 중 깨알같은 일부분인거니까요.

그렇게 아주 소수의 '기소되는' 사건을 바탕으로 통계결과를 추렸다는 것은,
무엇보다 '기소될 가능성이 높은 성폭력 사례를 수집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죠.
다시 말하면 재판부가 어떤 것을 성폭력으로 인정하는지 알려주는 십계명이고요.

그러니까 이번 서부지검에서 발표한 십계명에 따르면 '믿을 수 있는 성폭력 상황'은 이런거에요.


"성인 여성이 얇은 옷을 입고 밤길을 걸어다니다가 낯선 30대 성폭력 전과자 남성에게서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
'집에서도 일어난다'니 놀랍고, 술이나 약물을 이용하여 덫에 빠뜨릴 수도 있으니 주의 또 주의해라.
13세 미만 아동의 경우 보호자가 없는 낮에 평소 알고 지내던 가해자에게서 선물을 준다는 꾀임에 속아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



그러고보니 이런 생각도 듭니다.

만약 내가 경험한 성폭력이 이 십계명의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다면?
하지만 고소를 꼭 해서 가해자에게 법적인 처벌을 받게 하고 싶다면?
아마도 수사 재판부의 2차 피해를 일단 각오하고 생존의 의지를 다져야겠죠.

법무부에 올라와 있는 내용이라고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덜컥 믿었다가는 어휴... 정말 큰일 날 뻔 했잖아요.

그동안 수 많은 불기소와 무죄, 집행유예 판결로 고통받았던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리도 많았던 것이 ‘법리적 해석’ 의 문제만은 아닐거라던 성폭력 상담소들의 짐작이 맞았네요.

시민들의 '안전'을 생각해야 하는 분들이 그동안 이렇게 생각해오셨다니 생각할 수록 실망, 또 실망입니다.




뭐 한편으론 저희 상담소가 할 도리를 다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드니,

저희도 한 번 차근차근 풀어놓아 보죠.
상담소가 20년간 상담했던 6만 6천여회의 상담들에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한국사회의 성폭력 사건들이 어떤 경향을 보였는지 생존자가 말하는 '십계명'으로 적어볼께요.
일단 수 적으로도 우월하니 조금 주목해주시려나요?

혹여 검찰에서 우리 십계명을 읽어봐주신다면, 더 바라지도 않고 이 것만 부탁드릴께요.

내가 쓰는 지금 이 판결문, 내가 쓰는 지금 이 기소 처분이 ‘법리에 따른 해석’ 때문인지, ‘성폭력에 대한 통념’ 때문인지,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할거에요.

어쨌거나, 그동안의 온갖 노력들로 성폭력 생존자의 목소리와 상담 현장의 경험들이 잘 유통되리라고 생각한 저희의 잘못도 큽니다.
앞으로도 저희가 할 일이 더 많이 남았다는 걸 제법 깨닫게 되는 '십계명'이었습니다.

암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통계 보러가기 클릭!



->다음 이야기<② 생존자가 말해주는 레알 성폭력 10계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