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인 딸아이가 남자친구와 섹스를 했다고 하는데,
그럴 수 있는 건가요? 강간으로 고소할 수 있나요?
Q.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From 단풍 |
A.
안녕하세요 단풍님. 보내주신 글 잘 받았습니다.
딸아이가 또래 친구와 성관계한 사실을 알게 된 후의 대처 방법을 물어오셨네요. 단풍님께서 이번 일로 많이 놀라신 듯합니다. 최근 상담소에도 이런 유사한 문의를 해오는 분들이 많이 계신걸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아이들의 폭력과 성경험이 어른들에겐 큰 고민거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번 일에 대한 사후 대응 방법을 제안해드리기 전에 우선 단풍님이 지금 갖고 계시는 ‘어찌할 바 모르겠는 마음’에 주목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내가 지금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고 두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고소를 통해 이번 사안을 해결하고 싶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또한 배우자분이 이 상황을 알게 될 경우 어떤 점에서 겁이 나시는 건가요.
더불어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동의하의)성관계라고 말한 듯 보이지만 단풍님은 강간의 우려를 갖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따님이 남자아이를 두둔했던 것도, 남자아이와의 성관계를 강간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단풍님이 ‘강간’으로 느끼시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이번 사안이 강간이라면 당연히 따님의 의지에 따른 해결방법이 마련되도록, 단풍님은 따님의 믿을 수 있는 보호자이자 사건의 지원자가 되셔야 할 것입니다. 가해자의 진심어린 뉘우침과 사과, 가해자 고소 혹은 학교 측 징계 등의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로 인해 따님의 심리적 괴로움이 지속된다면 심리상담과 같은 임파워링 과정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따님이 남자아이를 두둔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부모님께 알려져서 놀란 나머지 자신의 강간 피해 사실을 덮으려 한 것이 아니라, 정말 동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면 단풍님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선 단풍님이 인내심을 갖고 어제의 일에 대한 따님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합니다. 무조건 ‘강간’이라며 텔레비전에 나올 법한 사건으로 몰아가려는 엄마의 태도에 따님이 많이 놀랐거나 화가 나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녀들의 연애, 자녀들의 성경험을 그럴리 없다, 내 아이의 자유의지일리 없다 판단하고 무조건 ‘성폭력’으로 설명하고 싶어하는 부모님들이 계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단풍님이 불안해하시는 그 지점은, 어쩌면 아이를 성적인 존재로 보고 싶지 않은 나의 욕구 때문일지 모릅니다. 혹시 딸아이가 자의에 의하여 누군가와 성관계를 하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은 골치 아픈 일로만 보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사람은 누구나 성적인 존재입니다. 십대들은 자신이 성적인 존재인 것을 깨닫고 목격하고 경험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십대들의 성경험은 어른들의 언어로 ‘장난, 실수’일 수 있지만, 이들에겐 선택이고 모험이며 놀이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단풍님의 걱정이 딸아이의 ‘혼전 순결’을 걱정하는 소위 ‘보수적’인 생각 때문이실 수도 있죠. 여기서 보수적이라는 것은, 딸아이가 여성이기 때문에 더 '성'과 관련된 것들을 몰라야 하고, 결혼과 관계된 성경험 만이 허용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여성들의 성적 의지와 실천에만 중한 잣대를 가하는 성불평등 사회의 산물이자 원인이기에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게 적용하는 '윤리적 잣대'는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유발했다'는 논리가 팽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너무 자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불안해하는 이유가 나의 어떤 마음가짐 때문이더라도,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나의 입장이 아닌, (지금까지 살펴본) 아이의 입장에 대한 배려있는 경청이기 때문입니다. 단풍님의 솔직한 생각을 잘 전달하시는 것도 따님에 대한 배려의 한 부분이겠죠. 그렇다면 이번 일로 십대인 따님과 함께 살아가는 단풍님이 더욱 고민해봐야 할 지점은 무엇일까요.
‘야동’이든 ‘친구들’이든 어떤 경로로 ‘섹스’에 대한 정보를 접한다고 하더라도, 십대들에게 섹스는 ‘금기’처럼 느껴지는 행동입니다. 특히 따님과 같은 십대의 여성들에겐 임신의 가능성(비혼모 되기)은 섹스와 함께 고민되는 문제이겠죠.
그렇다면 이번 일이 '강간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잠시 미뤄두고, 따님이 어떤 고민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와 섹스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고민의 과정에서 딸아이가 느낀 감정들을 함께 이야기해보는 것은, 앞으로 따님이 경험하게 될 연애와 그 속에서 발생할 자기 몸과 관련된 선택들에서 더욱 현명해질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물론 따님의 ‘자유로운’ 결정이 사실은 연애관계에서 발생하는 세세한 권력의 맥락이 작동한 것이었다면 그것이 폭력으로 말해질 수도 있음을 분명히 알려주셔야 합니다. 성차별적인 성문화에서는 따님뿐만 아니라 어떤 성인 여성이라도, 연애관계에서 상대방의 강요에 의한 성관계를 투명하게 ‘폭력’으로 바라보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단풍님께서 지금 갖고 있는 ‘남자친구의 부모를 먼저 만나야 하나’, ‘고소를 해야하나’의 고민들은 잠시 접어두시고, 따님과 다시 한 번 대화해보세요. 그리고 따님에게 그 남자아이와 어떻게 지내왔는지, 그리고 어제와 오늘 사이에 발생한 갈등은 무엇인지, 그 갈등의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직접 떠올려 보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더불어 따님이 앞으로의 ‘연애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들고 왠지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하는 순간이 온다면, 아무리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의 제안일지라도 거절해보는 용기를 갖도록 독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만큼 따님이 자신의 판단과 감정에 솔직하고 현명해지기를 바라시면서요.
From 토리
* 덧붙이는 글
상담의뢰글인 단풍님의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이 글에 나와있는 '십대 자녀의 또래간 연애에서 성관계 사실을 알고 고소에 대해 문의해오시는' 보호자분들의 상담을 재구성하여 만든 글입니다. 요사이 이런 상담들이 종종 걸려오고 있고, 상담소에서도 계속 고민하고 있었기에 기획한 글이었습니다.
사실 이 글은 곧 발간될 상담소의 회원 소식지 '나눔터'에 실릴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저희가 원고 청탁을 드린 교사분의 글에서 동일한 주제가 다뤄지는 바람에
이 글은 블로그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만큼 '십대의 연애와 성경험'이 많은 보호자, 교사 분들에게 '해결'하기 힘든 고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폭력이다 아니다, 자율이니까 괜찮다 아니다, 무조건 보호해야한다'와 같은 '찬반'식의 논쟁을 벗어나, 십대의 연애와 성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문화가 형성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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