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특별법 시행 20년④]

성폭력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로 뒤바뀌는 무고

나는 성폭력 피해자이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흐른 지금,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높아졌으나 아직도 성폭력 관련한 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성폭력특별법 시행 20주년을 맞이하여, 성폭력 사례들을 통해 성폭력에 무감각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점검해보고, 보완이 필요한 법정책에 대해 제언해 보고자 합니다. 본 기사는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서 구속...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제목으로 2014년 6월 9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지난 5월 14일, 한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서 구속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5월, 피해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가해자에게 성폭력을 당해 고소했다. 그러나 검사는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피해 직후 고소하지 않은 점과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오히려 피해자를 무고죄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일부분을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삼아 '성폭력 피해자'에게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이에 피해자는 "나는 절대 합의된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다"라고 울부짖으며 법정에서 구속 수감되었다.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에 또는 공무원에게 허위사실을 신고하는 죄를 이른다. 무고죄는 판례상 국가의 심판 작용을 해하는 죄이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죄로 역고소되는 경우는 검사에 의한 기소가 대부분이다.

지난 5월, 의정부지방검찰청은 성폭력 무고 사범을 적극 수사해 구속 기소하는 등 엄벌하겠다고 발표했다. 성범죄 관련 처벌이 강화된 만큼 가해자로 조사받았던 사람들도 수사 과정에서 심각한 불안과 고통을 받기 때문에 허위 고소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엄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정에서 구속된 성폭력 피해자, 왜?

 

 

 지난 5월 14일,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여성단체는 성폭력피해자에게 무고죄를 적용하여 법정 구속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판결에 대해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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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어느 날, 임대 광고를 보고 찾아간 피해자가 집주인에게 강간 피해를 입었다. 수사기관은 피해자가 피해 직후 고소하지 않고, 피해로부터 몇 개월이 흐른 뒤 고소했다는 이유로 고소 동기와 목적에 대해 끊임없이 추궁했다. 가해자로부터 성폭력 사실을 주변 사람에게 알리겠다는 협박까지 받은 피해자는 결국 스스로 고소를 취하했다. 그러나 얼마 뒤 피해자는 무고죄로 기소되었다.

검사는 "강간 피해를 입었다면 바로 신고했을 텐데 왜 당장 고소하지 않았느냐", "집을 임대해주지 않아 화가 나서 고소한 것이 아니냐", "만약 집만 임대해줬다면 고소는 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며 피해자를 의심했다.

피해 이후 피해자가 가해자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도 의심의 근거가 되었다. 집을 빌리지 못하면 당장 길바닥에 나앉을지 모르는 현실 때문에 성폭력 피해 이후에도 가해자와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애초 임대할 집이 없었음에도 피해자를 집으로 불러, 성폭력을 가한 가해자의 의도에 대해 검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작은 거짓말'이라고 치부한 반면 피해자의 고소에 대해서는 '큰 거짓말'이라 지칭했다. 이 검사는 '가해자가 임대할 집이 없었더라도 앙심을 품고 큰 거짓말을 하는 것은 엄청난 죄'라며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기소의 변을 밝혔다.

목격자나 증거가 부족한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피해를 입증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고, 무고죄 유무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혹여 피해자가 전과나 성적인 경험이 있거나, 가해자에게 합의금에 대해 언급했을 때 소위 '꽃뱀'이라는 의심을 사기 쉽다.

개개인의 성향이 다양하듯, 성폭력 피해 이후 당차게 일상생활을 하는 피해자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피해 이후 가해자와 문자 등으로 연락을 지속했거나,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하고 있으면 '성폭력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잘못된 통념이 작동하여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는 상황에 처한다.

2011년,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직장 상사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오히려 무고죄로 실형 6개월,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았다. 당시 수사관은 "술에 취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강간당한 상황만 기억이 날 수 있냐", "왜 반항하지 않았냐"며 피해자의 진술 자체를 의심하였다. 수사관은 거짓으로 진술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으름장도 놓았다. 수사기관으로부터 심한 모멸감과 성적 수치심을 느낀 피해자는 고소를 취하하면 모든 것이 다 끝나는 줄 알고 고소를 취하했다.

그런데 이후 피해자는 검찰의 출석요구에 성폭력 피해에 대한 추가 조사를 받는 줄 알고 응했다가 자신이 무고 피의자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겪는 2차 피해의 괴로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소를 취하한 행동이 검찰에게는 피해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무고 혐의를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된 것이다. 

성폭력은 주로 아는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을 동반하기보다 상대의 동의 의사 없이 강제적으로 일어난 피해가 많다. 따라서 검사가 폭행과 협박이 동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폭력 피해를 허위로 판단하고 무고로 기소해서는 안 된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에 근거하여 검사는 무고 사실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판사 또한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는지 판단하여야 한다.

 


'성폭력피해자다운 사람'이란 통념을 버려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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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에 근거하여 검사는 무고 사실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판사 또한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는지 판단하여야 한다.
ⓒ free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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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사무규칙 제70조에 따르면, 성폭력으로 고소한 사건이 '혐의 없음'으로 종결될 경우 검사가 무고 유무 혐의 판단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혐의 없음'으로 종결된 사건은 무고 유무 혐의 판단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수사관이 어떤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가에 따라 무리하게 무고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욱이 무고 유무 혐의 적용 기준이 별도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 한순간에 성폭력 피해자가 피의자 신분으로 뒤바뀔 수 있어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수사 과정에서 검사가 무고로 인지하게 되면, 피해자는 한순간에 가해자로 입장이 뒤바뀌어 수사를 받게 된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무고죄로 역기소된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정신적 피해를 막기 위한 법적 장치가 부재하기 때문에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로 이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수사기관과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에 대해 가지는 왜곡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남녀 사이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여자가 마음이 바뀌어서 저렇게 말하는 것이다'와 같이 우리사회의 성폭력 피해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어렵게 성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무리하게 무고죄를 적용할 수 있는 까닭은 성폭력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법 제도가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의심하는 통념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만연하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와 여성단체들의 반성폭력운동을 통해 성폭력특별법이 만들어진 지 20년이 되었다. 성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소한 피해자에게 오히려 무고죄를 적용하여 처벌한다면 법을 믿고 법의 보호를 받으려는 성폭력피해자들을 다시 침묵하게 만들 수 있다.

성폭력피해자가 무고죄 가해자로 둔갑하는 사건이야말로 이 시대가 만든 비극이다.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노력했던 20여 년의 공든탑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의 책임을 되짚어야 한다. "나는 성폭력피해자다!"라고 절규했던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가 제대로 새겨 들어야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경화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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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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