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특별법 시행 20년③]  성폭력범죄를 국민참여재판으로?

성폭력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회변화가 먼저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흐른 지금,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높아졌으나 아직도 성폭력 관련한 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성폭력특별법 시행 20주년을 맞이하여, 성폭력 사례들을 통해 성폭력에 무감각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점검해보고, 보완이 필요한 법정책에 대해 제언해 보고자 합니다. 본 기사는 "이보영도 한 이것,...성폭력 가해자만 웃는다"라는 제목으로 2014년 5월 14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2013년 7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1심의 무죄 선고를 뒤집고 2심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는 지체장애가 있는 남성으로, 당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신이 머물고 있던 여관방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남성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고 이 때문에 항문이 파열되었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다수는 피해자가 격렬히 저항했다고 진술하나 항문 파열 외에 상해가 없다는 점, 피해자가 상황 진술 일부를 번복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무죄 의견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배심원들이 피해자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였다면 하는 아쉬움'을 표했지만 배심원 평결을 존중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상해 여부 등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일부 번복한 점을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판결은 부당하다고 보아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상당수 성폭력 사건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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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과 논의 중인 장면.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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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이 배심원이 되어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로, 법조비리 및 전관예우 방지에 기여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 지난 2008년 도입되었다. 배심원으로 선정된 사람은 보통의 상식과 판단 능력으로 사건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이를 재판부에 권고하는 몫을 맡는다. 평결을 통해 모아진 배심원의 유무죄 의견은 재판부가 존중하여 판결에 반영하게 되어 있다.

형사재판 중 상당수의 성폭력 사건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고 있다. 거의 대부분 가해자 측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다. 성폭력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으면 재판부가 이를 배제할 수 있는 근거조항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폭력피해자의 반대 의사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을 수 있는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을 재판부가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에는 친부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피해자는 지적장애가 있는 아동으로, 국민참여재판이 피해자의 심리적 부담감을 가중시키고, 피해가 지역사회에 알려지는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유로 피해자를 지원한 성폭력상담소가 재판부에 국민참여재판 배제를 거듭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폭력피해자 진술 신빙성 의심, 무죄 평결 경우 많아


2013년 3월 공개된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8.4%)은 일반 형사사건의 무죄율(3.3%)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때문에 이같은 무죄율에 주목한 성폭력 가해자 다수가 전략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성폭력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될 때 염려되는 것은 한국사회의 성폭력 통념에서 비롯된 가해자 중심의 관점이 고스란히 재판 결과에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 성폭력범죄의 수사·재판은 성폭력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과도하게 문제 삼아왔다.

2013년 초, 일간지를 통해 공개된 대검찰청의 '국민참여재판이 배심원 무죄 평결에 미치는 요인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도 성폭력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했기 때문에 무죄를 평결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한 성폭력 피해자도 자신을 감금하고 강간하려는 가해자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지만, 폭행 정도에 대한 진술을 번복했다는 이유로, 배심원 전원은 가해자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성폭력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일관되고 분명하게 진술하는데도 상세한 상황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폭행 정도 등 일부 세부사항을 번복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평결하는 것은 세부사항을 혼동할 수도 있는 성폭력 피해자의 심리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다.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피해자를 지나치게 의심하기 쉽다. 성폭력 범죄에서 재판부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결'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비난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배심원이 가진 '보통의 상식'이 선입견이나 편견, 통념일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재판부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결'이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시각, 가해자의 편에서 구성된 객관성이기 쉬운 것처럼 배심원이 가지는 '합리적 의심' 또한 가해자의 편에서 피해자를 의심하는 기존의 통념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요청이나 동의만을 구하는 국민참여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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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진행은 성폭력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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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이 사법 절차의 주체가 된다는 좋은 취지의 제도이다. 그러나 성폭력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진행은 성폭력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법은 가해자의 요청이나 동의만을 구한다.

 

제9조의 3항


3.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의 범죄로 인한 피해자(이하 "성폭력범죄 피해자"라 한다) 또는 법정대리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 


 


성폭력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을 강행할 수 있는 이같은 현행법은 보완될 필요가 있다.

그간 성폭력범죄 관련법이 꾸준히 개선되어 왔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여러 제도가 만들어져왔다. 그러나 아무리 법제도가 개선되더라도 현장에서 수사관이나 법 집행자가 그 제도를 잘 적용하지 않고, 활용하지 않는다면, 성폭력 피해자가 느끼는 현실은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었던 이십여 년 전과 같을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의 취지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으려면 성폭력 피해에 대한 왜곡된 사회인식이 변화하고, 성폭력 피해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었을 때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 어떤 제도도 국민의 인식과 감수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정당하게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를 피해자가 유발하였다는 등 잘못된 성 통념이 만연한 우리사회에서 성폭력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공정한 판단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무엇보다 성폭력 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회변화가 먼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방이슬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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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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