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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대해서/성폭력특별법 시행 20주년

[성폭력특별법 시행 20년⑥] 사라지지 않는 성폭력 2차 피해

 

 

 

 

 

 

[성폭력특별법 시행 20년⑥] 사라지지 않는 성폭력 2차 피해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흐른 지금,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높아졌으나 아직도 성폭력 관련한 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성폭력특별법 시행 20주년을 맞이하여, 성폭력 사례들을 통해 성폭력에 무감각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점검해보고, 보완이 필요한 법정책에 대해 제언해 보고자 합니다. 본 기사는 "성폭력은 여성탓... 경찰 절반의 끔찍한 뇌구조" 라는 제목으로 2014년 7월 11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2011년 2월 성폭력 피해자가 증인진술을 다녀온 다음 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피해자의 유서에는 "재판장이 피해자인 나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적혀 있었다.

재판부가 합의를 종용하고, 가해자 측 변호사가 피해자에게 과거 노래방 도우미로 일했던 경력을 추궁했다는 언론보도가 뒤를 이었다.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 것이라 기대했던 피해자에게 오히려 재판부는 합의하라며 부담을 줬고, 가해자 측 변호사는 피해자의 이전 경력을 문제 삼아 성폭력 피해의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성폭력 피해 이후 언론, 사법기관, 가족, 주변 사람들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포함해 성과 관련된 모욕적인 말을 하거나 피해자 개인의 신상이나 사생활을 침해하여 피해자에게 또 다른 정신적, 사회적 피해를 주는 것을 '2차 피해'라고 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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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8월 기준, 총 638명의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국선변호사가 등록되어있는데, 참여권과 의견진술권에도 불구하고 재판에서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아 공판출석권인정 등의 제도변화의 요구가 높다.
ⓒ 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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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재판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수사관의 의심이나 비난, 수사와 상관없는 이전의 성 경력이나 사생활에 대한 질문 등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주는 행위뿐 아니라 합의종용이나 수사지연 등으로 정신적인 피해를 주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수사와 재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경찰과 검찰에는 성폭력 전담 수사팀이, 법원에는 성폭력 전담 재판부가 있다.

이 제도가 있기 전에는 성폭력 피해를 진술하기 위해 법정에 갔던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 가족에 둘러싸여 "합의하지 않으면 못 보내준다"고 협박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뿐만 아니라, 형사재판은 누구나 방청할 수 있어 수많은 방청객들이 있는 상태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증인진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폭력 피해자의 얼굴은 물론 피해 내용까지도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를 감당해야 하는 피해자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2차 성폭력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2012년부터 성폭력상담원 교육을 이수한 법원 담당관이 성폭력 피해자 증인진술 전 과정에 동행하고 있다. 또 가해자가 법정에서 나간 뒤 법관이 이용하는 통로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 들어와 증인진술을 할 수 있는 제도도 만들어졌다.

부모님이나 친구, 상담소 활동가 등 성폭력 피해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증인진술뿐만 아니라 수사재판 전 과정에 동석할 수 있다. 또 사전에 신청하면 방청객들이 다 나가고 재판부와 가해자 측 변호사만 있는 상태에서 증인진술을 할 수 있는 비공개 재판도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는 모든 연령대의 성폭력 피해자가 국선 변호사를 지정하여 성폭력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 의견을 적극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가 있거나 13세 미만인 피해자의 경우에는 진술 조력인의 도움을 받아 보다 명확하게 피해에 대해 진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제도 마련에도 수사재판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2차 피해는 여전하다.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마련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54% "성폭력 원인, 여성의 심한 노출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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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개봉한 영화 <한공주>는 2005년 발생한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되었다. 당시 이 사건의 담당 경찰관이 피해자에게 "밀양 물 다 흐려놓았다"라며 2차 피해를 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 리(里)공동체 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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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3개 중소도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182명 중 53.8%가 여성의 심한 노출로 인해 성폭력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술에 취한 여성이 성폭력을 경험할 경우,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37.4%였고, 늦은 밤에 여성 혼자 길을 걷다가 성폭력 피해가 발생한 경우 피해자의 책임이라는 응답 역시 20.3%나 되었다.

성폭력 피해 직후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힘들다는 응답은 24.2%,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경우 가해자의 말을 더 신뢰한다는 비율도 12.1%나 되었다. 사법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성폭력 피해자가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일선 경찰관들의 인식 수준이 이정도라니. 성폭력 피해자가 겪을 수 있는 2차 피해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만한 연구 결과다.

경찰들뿐 아니다. 다른 범죄와 달리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념은 우리 안에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여성의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 피해를 유발했다거나, 여성 혼자 늦은 밤길을 거닐거나 술을 먹는 등 소위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 못하면 성폭력 피해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인식 등이 그렇다.

가해자와 성폭력 피해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다면 성폭력 피해가 아니라 성관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고, 성폭력 피해 이후 바로 신고하지 않다가 이후에 신고할 경우,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라 뭔가 요구하는, 일종의 '꽃뱀'일 수 있다는 의심도 성폭력 피해에 대한 통념이자 오해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이러한 통념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스스로 피해를 호소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2차 피해를 주고, 더 나아가 가해자를 두둔하는 분위기를 형성하여 결국은 성폭력 근절을 요원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제도만으로 부족한 성폭력 2차피해 방지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법제도의 변화 속에 특히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지원제도, 보호 방안은 다른 선진국가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우리사회의 잘못된 오해와 사회적 낙인은 2차 피해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물론 법제도의 많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부분도 존재한다. 2013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으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질문은 수사재판과정에서 할 수 없도록 제한됐다. 하지만 가해자 방어권의 명목으로 이전의 성 경력을 묻는 등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신문은 아직도 이뤄지고 있다.

각 경찰서마다 성폭력전담수사팀이 신설되었지만, 2년 이내에 보직이 변경되고 있어 제도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더 세밀하고 정교한 시행계획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오해와 통념이 내 안에 있지 않은지 우리 모두 스스로 되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방지는 제도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