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특별법 시행 20년⑦] 친족성폭력 불기소율이 높아지는 이유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흐른 지금,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높아졌으나 아직도 성폭력 관련한 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성폭력특별법 시행 20주년을 맞이하여, 성폭력 사례들을 통해 성폭력에 무감각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점검해보고, 보완이 필요한 법정책에 대해 제언해 보고자 합니다. 본 기사는 "아빠가 집에 있으면 늘...어찌 다 기억해요" 라는 제목으로 2014년 8월 10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현행법상 친족성폭력은 4촌 이내의 혈족과 인척, 동거하는 친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말한다. 아버지와 오빠에 의한 피해가 가장 많고, 함께 생활하는 가족 안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횟수를 세지 못할 만큼 발생하는 게 대부분이다.

친족성폭력은 가해자가 사랑을 위장하여 피해자가 어린 시절부터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20여년간 진행한 상담 통계에 따르면, 어린이와 유아의 경우 친족과 친인척에 의한 성폭력이, 성폭력 피해 가운데 절반 이상의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성폭행 피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친족성폭력

기사 관련 사진
 현행법상 친족성폭력은 4촌 이내의 혈족과 인척, 동거하는 친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말한다. 아버지와 오빠에 의한 피해가 가장 많다.
ⓒ freeimages

관련사진보기


어린 아이의 애정욕구와 취약함을 악용하여 접근하는 가해자의 의도를 모르는 피해자는 성폭력 상황에서도 자신이 사랑받고 있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나중에 피해자가 성장하여 무언가 이상하고 불편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아도 이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란 쉽지 않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혼란스러움을 악용하여 "네가 원해서 한 거잖아", "너도 좋잖아" 등의 말로 피해자도 성폭력에 동조하고 있다고 설득한다. "아무도 니 얘기를 믿어주지 않을 거야", "이 일을 엄마가 알게 되면 엄마는 죽을지도 몰라", "이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 가족의 평화는 깨질 거야" 같은 위협적인 말로 협박하며 피해자에게 비밀을 지킬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삶 속에는 성폭력과 일상이 뒤섞여 있어서 피해자의 모든 일상을 피해로만 서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버지와 딸이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엮여 살아왔던 수많은 시간은 '분노'라는 하나의 감정으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성폭행에 시달리면서도 가끔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관심과 사랑을 주고받기도 한 양육자이자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친족성폭력 문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친족성폭력 가해자 무죄에서 7년형, 왜 이런 차이가 날까?

기사 관련 사진
 1심에서 무죄였으니, 항소심 재판부는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진술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미정의 아버지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 freeimages

관련사진보기


3년 동안 아버지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미정(가명)은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학교 선생님에게 털어놓았다. 학교 선생님은 미정으로부터 이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경찰에 신고하였다. 당시에 미정이는 고통스런 피해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이지만 자신을 보호할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를 고소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법적 진행 과정에서 아버지를 처벌하기 위해 진술을 거듭해야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장기간 지속되었던 피해 사실을 정확히 기억해서 진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성폭력을 당하는 것보다 조사 과정이 더 싫고 힘들었다"는 미정이 사건의 가해자는 1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불안한 상태에서 진행한 미정이의 초기 진술이 피해사실의 '신빙성'과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가해자의 무죄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피해 일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면서 진술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의심받게 되는 상황은 많은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이 법적 진행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고충이다. 장기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범행을 일일이 기억하여 정확히 진술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겪었던 사건을 잊고,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뒤섞어 왜곡하고 별 것 아닌 일처럼 기억을 바꿔 버리기도 한다.

더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의 기억이 서서히 희미해지는 점을 고려할 때, 피해자들에게 피해일자를 완벽하게 기억해 진술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수사 재판 과정에서 "왜 그런 중요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냐"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들을 때마다 미정이가 했던 "아빠가 집에 있으면 늘상 있었던 일인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냐?", "난 기억하기도 싫다"고 한 항변은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상황을 정확히 대변하는 것이다.

다행히 항소심 재판부는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진술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미정의 아버지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히 나이 어린 피해자가 장기간에 걸쳐 친족간 성폭력 범죄를 당한 경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할 때 이와 같은 친족간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친족성폭력 가해자 처벌 아직은 요원하다

기사 관련 사진
 2014년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에서 발간한 <당하지 않겠어>는 친족성폭력을 포함한 아동성폭력 예방을 위한 지침을 담았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관련사진보기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영교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검찰 수사사건 중 최근 5년간 친족관계에 의한 성폭력사건은 모두 2169건으로 집계됐다. 2008년 293건이었던 것이 2012년에는 466건으로 59% 증가했다. 이에 비해 연도별 불기소율은 2008년 78건(26.6%)이었던 것이 거의 매년 증가하여 2012년에는 135건(29%)로 증가하였다. 친족성폭력 사건 4건 중 1건은 '혐의 없음' '기소유예' 등으로 불기소 처분된 셈이다.

친족성폭력 피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분노 감정에도 불구하고 형사 사법 절차에서 불기소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친족성폭력 피해의 특성이 충분이 고려되지 않은 결과이다. 아직까지 친족성폭력은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발생하는 범죄라는 인식, 특별히 괴물같은 가해자만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고, 믿기 어려운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이 피해자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한다. 이에 반해 가해자들은 명확한 증거가 없는 경우 '성실한 사회인이자 책임감 있는 가장'이었다는 이유로 쉽게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피해자는 피해의 지속성 때문에 피해 사실을 특정하기 어렵고 양육자이면서 보호자인 가해자에 대한 양가 감정과 가족이 처할 생계곤란 등에 대한 걱정 등으로 심리적·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런 친족성폭력 피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가해자 처벌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때 친족성폭력 근절을 위한 진전을 이룰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원장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한국성폭력상담소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