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특별법 시행 20년⑤]

공탁 제도가 성폭력 피해에 미치는 영향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흐른 지금,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높아졌으나 아직도 성폭력 관련한 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성폭력특별법 시행 20주년을 맞이하여, 성폭력 사례들을 통해 성폭력에 무감각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점검해보고, 보완이 필요한 법정책에 대해 제언해 보고자 합니다. 본 기사는 "엄마 성폭행하려 한 친구, 어떻게 실형 피했나 봤더니..."라는 제목으로 2014년 6월 26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2014년, 한 대기업 회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배임횡령 금액은 1500억 원 가량으로 대법원의 양형기준으로는 최소 4년에서 최대 11년의 형을 선고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총 1636여억 원, 즉 기소금액에 대한 변제를 마칠 수 있는 금액을 공탁하여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공탁이란 형사재판 진행 과정에서 피해자와 형사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가해자가 일정 금액을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법원이 피해 회복에 대한 노력을 가해자가 하고 있다고 고려하는 제도이다. 공탁금은 이후 피해자가 공탁소를 통해 찾을 수 있고, 피해자가 공탁금을 10년간 찾아가지 않는 경우에는 국가에 귀속된다. 이때 '상당 금액의 공탁'은 양형기준상 형의 감경 요소로 고려되기도 하는데, 성폭력 범죄에도 적용된다.



잘못은 했지만 돈냈으니 형량 감경해줄게?





▲  영화<공정사회>에서 10살 된 딸이 성폭력피해를 입은 후, 그녀(장영남 분)는 상담사를 찾아가지만, 상담사로부터 범인을 잡는 것도 힘들지만 잡아도 낮은 처벌을 받거나 공탁으로 그냥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을 전해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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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는 종종 형량을 감경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탁 제도를 이용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피해자와 합의 시도를 전혀 하지 않거나, 피해 회복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형량을 감경시키기 위해 공탁금만 제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공탁이 진정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인지 사법기관에서 확인하는 별도의 장치가 없기 때문. 그런데도 가해자와 합의하지 않고 엄벌을 원하는 피해자의 의사와 달리 공탁을 했다는 이유로 양형이 감경되기도 하는 것이다.


2011년 6월, 친구 어머니를 흉기로 위협한 뒤 성폭력을 가하려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가해자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이 선고되었다. 가해자는 친구의 집에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신 뒤 잠을 자다 안방으로 들어가 친구 어머니의 지갑에서 현금을 훔치고, 흉기로 친구 어머니를 위협한 뒤 성폭력을 시도했다. 


가해자는 가해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가해자가 속옷차림으로 흉기를 사용하여 피해자를 위협하면서 침대에 누우라고 강요한 점을 볼 때 가해 의도가 명백하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가해자가 1000만 원을 공탁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형법 62조에 따르면, 집행유예 판결은 3년 이하 징역 혹은 금고형의 범죄에서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다. 양형기준상 2년 6개월에서 5년 사이의 실형을 내리도록 권고되는 강간죄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가능했던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는 가해자가 상당금액을 공탁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피해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공탁이 긍정적인 양형 사유로 작용되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2013년 10월, 별거 중인 아내를 집으로 유인하여 손발을 묶고 성폭력을 한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가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가해자의 죄질이 불량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엄연한 법률상 부부이며,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해 금원을 공탁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그렇지만 별거 중인 아내를 유인하여 손발을 묶은, 신체적인 구속 상태에서 성폭력을 한 가해자에 대해 '상당금액의 공탁'을 근거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피해자의 엄벌의지를 꺾은 판결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2013년 5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아내 강간죄가 명문화되어 '엄연한 법률상 부부'여도 폭행 협박에 의한 성관계는 부부간의 의무사항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법리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피해회복을 위한 가해자의 노력이 먼저 고려되어야



공탁은 (합의를 결정할 수 있는) 피해자가 원하는 만큼의 합의금을 가해자가 줄 수 없는 경우, 가해자의 불리한 위치를 고려하기 위한 정책적 판단에 의해 도입된 제도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합의 의사가 없는데도, 가해자가 형을 감경하기 위해 공탁제도를 사용하는 경우 '돈만 있으면 형을 줄일 수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공탁이 형량 감경의 한 요인이 되는 것에 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가해자가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공탁을 한 것인지에 대해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등의 절차상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공탁 과정에서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것도 공탁이 갖는 문제점 중 하나이다. 현재 공탁 제도를 이용하려면 공탁금을 찾을 피공탁자인 피해자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적시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가해자에게 노출될 수 있다.


가해자가 공탁을 위해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법원에 요청할 때,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가 명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곧바로 가해자에게 알려지는 피해가 생기는 것이다. 이럴 경우, 가해자로부터의 무리한 합의 요구를 받는 등 심각한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때문에 최근에는 피해자 국선변호인을 피공탁자로 지정하여 공탁을 하거나, 법원이 공탁관에게 바로 피해자의 인적정보를 전달하는 방법 등의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20년 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성폭력 근절을 위한 많은 법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가해자 처벌에 대한 확실성은 부족하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합의가 아니라 처벌하고자 하는 피해자의 의사와 달리 공탁제도를 악용하는데 이를 방관한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성은 사라질 것이다. 


성폭력 근절을 위해 가해자 처벌의 확실성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양무현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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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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