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특별법 시행 20년②] 사법기관은 누구를 성폭력피해자라 말하는가
-수사·재판기관에서 작동하는 ‘피해자다움’ 잣대의 문제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흐른 지금,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높아졌으나 아직도 성폭력 관련한 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성폭력특별법 시행 20주년을 맞이하여, 성폭력 사례들을 통해 성폭력에 무감각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점검해보고, 보완이 필요한 법정책에 대해 제언해 보고자 합니다. 본 기사는 "12세 여아 강간했는데 무죄...'항거불능'이 아니었다?"라는 제목으로 2014년 4월 22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
2010년 검찰은 12세 소녀에게 술을 마시게 한 뒤 차례로 강간한 20대 남성 3명을 특수준강간 혐의로 기소했다. 행위객체가 만 13세 미만이면 합의 여부에 상관없이, 간음 또는 추행은 미성년자의제강간죄가 성립하지만, 검찰은 "피해자가 피고인들에게 16세라고 말했고, 일행 3명 중 1명은 18세이므로 피고인들이 이를 사실로 믿을 만한 사정이 있었으며, 피해자 키가 157cm 등 외모가 성숙해 통상적으로 13세 미만이라고 보기 어려워 '미성년자의제강간죄'를 적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이 객관적인 나이가 아니라 피해자의 '외모'나 피해자의 나이에 대한 가해자의 인지 여부를 공소요건으로 주요하게 판단한 것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법원의 판결이다. 법원은 검찰의 잘못된 공소사실을 그대로 수용했고, 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선고의 취지는 "피해자가 어린소녀이고 음주를 한 사정은 인정되나 그 상태가 심리적·물리적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재판부가 인정하는 '피해자다움'은 이미지일 뿐
▲ 법정 위에서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힘들다'는 자신의 무력함을 증명해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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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사건 당일 12세, 18세 일행 2명과 함께 채팅을 통해 가해자들을 만났고, 이들과 함께 여관에서 술을 마셨다. 피해자가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자, 가해자들은 차례로 피해자를 강간하기로 마음먹고 방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력을 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의 일행 중 한 명이 피해자가 있는 방으로 갔을 때 별다른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점, 피해 직후 피해자 스스로 옷을 챙겨 입고 나왔고, 이후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 피고인들에게 차비를 받았다는 점을 들어 무죄로 판시하였다.
성폭력은 폭행, 협박 등의 강제성이 동원된 성적행위로 정의되는데 문제는 이 강제성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이다. 이제까지 재판부는 가해의 행위나 피해의 정도로 강제성을 판단하기보다 피해자가 대응, 즉 '피해자가 심리적·물리적 반항이 불가능했는지 여부 또는 얼마나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였는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성폭력 진위여부를 판결하는데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재판부가 인정하는 '피해자다운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 단 하나의 이미지 속에서 '순수한' 피해자는 취약하고 무력한 '여성'이면서, 어떤 조건에서도 '끝까지' 저항하기를 택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술에 취한 12세 소녀가 재판부가 기대하는 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하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많은 경우 성폭력 피해자는 혼돈 속에서 자기 방식대로, 피해 당시 자신에게 닥친 폭력과 공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얼마나 더 커질지 모르는 폭력의 위협을 느낀다면,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가해자의 요구를 저항하기보다 수용할 수 있다.
한편 피해자가 당황하기보다 덤덤하게 반응하는 것은 상황을 최대한 안전하게 끝내려는 방법일 수 있고, 이는 분명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무기력하게 끌려다니거나, 대응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라고 사후 피해자가 자신의 대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혼돈스러운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물론 피해자가 자신을 방어하는 '최선의' 대응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재판부가 손쉽게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성폭력 가해 여부를 재고하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씻을 수 없고 회복할 수 없는" 상태라야 피해 인정?
사법부는 사회 통념을 기준으로 성폭력 피해의 의미를 판단하고 피해자를 인정한다. 특히 성폭력피해는 남성의 성욕이 통제할 수 없고 해소돼야만 한다는 통념, 보호해야 할 성(아동과 순결한 여성)과 보호할 필요가 없는 성('꽃뱀')을 구별하는 통념과 연결된다. 이 통념에 부합하는 피해자다운 반응은 보호받고 인정받는 반면 그렇지 않은 다양한 반응들은 맥락에 관계없이 '피해자답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피해자답지 않은 반응은 더 나아가 피해자 역시 그 상황을 동의하고 유발한 것이라는 '피해자 책임론'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과거 성경험은 어떠한가', '평소 행실은 어떠한가', '가해자는 어떻게 알고 지냈으며', '왜 가해자와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었는가', '그때 무엇을 입고 술은 얼마만큼 마셨는가'라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뤄지는 질문들은 '사실확인'의 목적이라 하더라도 통념에 기반해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피해자들이 피해를 인정받거나 가해자를 처벌하려 할 때, 공권력을 가진 수사기관이나 재판기관의 판단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성폭력 상황이 자신이 야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재판부가 인정하는 '피해자다운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할 것을 강요받는다. 가해자와 성폭력에 관대한 사회문화에 분노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피해를 주장하는 모습이 아니라, "씻을 수 없는" 충격을 입고,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신체적 상처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것이다.
법정 위에서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힘들다'는 자신의 무력함을 증명해야 한다. 순수한 피해자, 취약하고 보호가 필요한 피해자를 가늠하려는 재판기관의 '피해자다움'의 잣대는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스스로를 무력하다 여기면서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를 습득하도록 만든다. 피해자들의 안정적인 삶을 지원해야 할 수사·재판기관이 오히려 '회복할 수 없는 피해자' 통념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피해자를 함구하게 만드는 논리들
▲ 피해자다운 피해자는 없다. 내가 누구든,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 강제와 억압에 의해 발생한 성적 행위는 성폭력일 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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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성폭력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는 의붓아버지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솔직히 말해야 한다, 아빠랑 사귄 거 맞지 않느냐, 카카오톡 내용을 보니 아빠랑 사랑한 거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던 민간상담소 활동가와 피해자 변호인이 즉각적인 항의를 했다.
친족성폭력피해자들은 많은 경우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성폭력에 자주 노출된다. 이런 조건에서 아버지나 형제, 친척 등 친밀한 관계인 가해자는 단지 강제적 무력으로 가해하기보다, 애정을 과시하고 '친밀한 관계'를 설득하며 성폭력 행위를 지속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심리전문가들은 취약한 환경의 아동·청소년이 친족 관계인 가해자의 성폭력을 관심이나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특이한 상황이 아님을 강조한다. 친족성폭력이나 아동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가질 수 있는 양가적인 감정의 특성은 성폭력을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라는 성인 중심의 논리로 적용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이 가해자에게 가졌던 다양한 감정이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고, 자신이 '순수한' 피해자가 아닐지 모른다는 자기 비난으로 흐르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은 각자 다른 위치의 피해자가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가지는 감정이 성폭력 가해 자체를 부정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주의해야 한다.
피해자다운 피해자, 그런 건 없다
성폭력을 신고한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쉽지 않은 결단이다. 경찰서든 법원이든 익숙하지 않은 공권력의 공간에서 정해진 용어들로 자신의 피해를 증명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와 의지, 시간과 돈이 요구된다.
신고가 성폭력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피해자가 공적 차원에서 가해자를 고소하고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성폭력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가해자의 폭력이 아닌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을 잣대로 성폭력을 판단하는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은 피해자에게 커다란 벽으로 다가온다.
피해자다운 피해자는 없다. 내가 누구든,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 강제와 억압에 의해 발생한 성적 행위는 성폭력일 뿐이다. 성폭력 상황과 피해자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 그것을 깨는 것이 성폭력을 누구에게든 벌어질 수 있는 일로 인정하고, 누구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로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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