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특별법 시행 20년①] ‘김00 성폭력 사건’ 이후 나의 삶이 변했다고?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흐른 지금,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높아졌으나 아직도 성폭력 관련한 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성폭력특별법 시행 20주년을 맞이하여, 성폭력 사례들을 통해 성폭력에 무감각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점검해보고, 보완이 필요한 법정책에 대해 제언해 보고자 합니다. 본 기사는 "성폭행 피해자의 가해자 응징...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제목으로 2014년 4월 10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
우리는 매일 새로운 성폭력 사건을 기사로 접하며 살고 있다. 나와 내 가족에게 성폭력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성폭력을 하나의 범죄로서 제대로 처벌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 년 전이다. 성폭력과 성폭력피해자의 고통을 국가책임으로 인정하고 성폭력예방과 성폭력피해자보호에 노력을 기울여온 세월도 같다.
성폭력특별법이 만들어져온 역사를 보면 가해자 처벌 형량을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성폭력특별법이 만들어진 큰 계기가 된 '김OO사건'과 '김△△, 김□□' 사건을 보면 미비한 법과 제도보다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민들의 인식이 더욱 큰 문제였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가해자들은 자신의 성폭력 가해를 사적인 문제 정도로 생각하고, 피해자들은 자신의 행실을 자책하며 주변에 이야기하지 못한다. 성폭력피해자의 입장에서 신뢰할 만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20년 동안 충격적인 성폭력 사건들의 기억과 함께 변화된 한국의 법과 제도는 과연 신뢰할 만한 사회를 만들어왔을까.
20년 만의 보복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
▲ 장애인 학생 성폭행을 다룬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 |
ⓒ CJ 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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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어느 날 심부름을 해달라던 아저씨를 따라 이웃집에 갔던 아홉 살 여아가 강간 피해를 입었으나, 피해자는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무서운 아버지에게 혼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여아는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91년 자신을 강간한 아저씨를 살해한 살인자가 되어 전 국민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것이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에관한법률(아래 성폭력 특별법)' 제정의 시초가 된 김OO 사건의 전말이다.
성폭력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 성폭력 예방교육의 부재, 성차별적 성문화가 성폭력을 해결할 수 없게 하고 피해자들을 함구하게 만들었다. 김OO 사건이 알려지기 전 기사를 보면 당시 사회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한 검사가 강간 사건 조사 과정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가해자가 잘못하면 2년 정도의 실형을 살게 되는 등 인생을 망치게 된다'며 피해자를 설득하여 고소를 취하하게 하고 양가 부모의 동의를 얻어 혼인신고를 마친 후 석방시킨 사건이 있었다('강간혐의로 구속 30대. 검사 피해자 설득 결혼', 경향신문 1989년 12월 7일). 성폭력이 무엇인지 그야말로 인식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수많은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은 김OO처럼 성폭력 피해의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살아야했다. 재판정에서 그녀가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고 변론한 것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가해자를 보복 살인한 김OO 사건을 통해 성폭력피해생존자가 제도적 도움을 얻을 수 없어 스스로 보복하게 만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퍼져나가면서 전국적인 연대가 이뤄졌다.
그녀를 지원하는 모임이 꾸려졌고, 언론 보도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안타까워했다. 사건발생 지역을 중심으로 '성폭력피해자 김OO사건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범국민적 후원 운동이 전개되었고 석방 이후에는 무료로 그녀를 치료해주겠다는 병원도 나타났다.
그녀는 1심에서 살인 혐의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3년과 치료감호처분 3년을 선고받았다. 여느 살인죄보다 가벼운 판결이었지만 그녀를 지원한 단체들은 최종적인 무죄 판결을 위해 무료변호인단과 함께 항소를 지원했다. 이 사건은 치유되지 못한 성폭력의 고통을 알려냈을 뿐만 아니라 성폭력피해생존자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결집된 첫 사건이었다.
3년여 만에 성폭력특별법 시행, 국민 인식도 변했다
▲ 지난 2013년 3월 19일 오후 경기도 용인 신리초등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이 상황극을 통해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들이 성폭력 위협에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안전한 엘리베이터 타기 등 실제 사례를 집중적으로 다룬 성폭력 예방교육 교재를 전국 초등학교 교사에게 보급한다고 밝혔다. |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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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OO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 딸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한 의붓아버지를 딸의 남자친구가 살해한 '김△△, 김□□'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 사건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동대책위원회에는 전국의 대학생들도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이 두 사건의 공동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진 이후,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꾸려졌다. 1991년 김OO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했던 대구여성회, 전주성폭력예방치료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축이 되어 성폭력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포괄하는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을 시작했다.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하여 당시 여성계의 역량이 집중되면서 한국여성단체연합 산하 '성폭력특별법 제정추진특별위원회'도 만들어졌다. 특히 '김△△, 김□□' 사건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성폭력특별법 마련을 위한 활동이 3년여간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김△△, 김□□' 사건 재판 시, 피해생존자 심문 과정에서 친족성폭력에 대한 이해(성폭력이 아닌 화간일 것이라는 관점)가 부족했던 법조인의 왜곡된 성의식이 드러나, 성폭력 관련법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실 뿐만 아니라 법조인의 왜곡된 성의식 또한 시민들의 공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마침내 1993년 8월 성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공분과 여성계의 노력으로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고 1994년도부터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정부가 민간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던 성폭력상담소와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에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성폭력피해자 대상 지원 제도 마련 뿐만 아니라 성폭력 실태조사, 성폭력 예방교육, 성폭력 상담소와 피해자 보호시설 지원의 근거도 담겨져 시민들의 성폭력 관련 인식까지 점검하고 바꿀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함께 마련되었다.
김OO 사건과 '김△△, 김□□' 사건은 성폭력 사건을 정당하게 수사하고 처벌하도록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되는 기틀을 마련한 사건이 되었다. 당시 운영 초기였던 성폭력상담소에는 이들 사건의 영향으로 아동기 성폭력과 친족 성폭력 후유증을 호소하는 성폭력피해생존자의 상담이 폭주했다.
성폭력 2차 피해는 여전히 과제... 당신의 성의식은?
▲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변화시키기 위해 매년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 |
ⓒ 한국성폭력상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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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건이 평생 성폭력 경험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살았던 피해생존자들에게 말할 용기를 주는 도화선이 되었고, 수십년 동안 성폭력 경험을 말하지 못한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은 성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증명했다.
만약 90년대 한국사회가 성폭력에 대한 최소한의 경각심이라도 갖춘 사회였다면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끔찍한 보복을 저지르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폭력특별법 제정은 성폭력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한 사회변화의 시작이었다. 이밖에도 여전히 시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성폭력피해생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법을 새롭게 만들고 정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관련 법제도가 상당 부분 개선되어왔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여전히 실제 법이 적용되는 수사재판 현장에서는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유죄선고율도 낮게 나타난다. 2012년 나주 초등학생 납치 성폭력 사건에서 나타났듯이 법과 제도 마련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의식의 문제는 여전하다.
당시 일부 언론사들은 성폭력 피해자의 집에 무단 침입하여 촬영한 사진과 해당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 가족의 사연들을 자극적으로 보도하여 성폭력피해생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주었다. 이와 같은 보도 태도에 대하여 언론인권센터는 <SBS> <채널A> <경향신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3월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는 "피해자들에게 모두 7800만 원을 배상하고 관련기사 일부를 삭제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넘어 나의 성의식을 돌아보는 것이 성폭력에 제대로 반격하는 제도 마련의 시작이다. 무엇보다 성폭력 피해 이후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을 지지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성폭력 관련 법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수많은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는 또 다른 피해자의 고통없이 법제도의 미흡한 부분이 개선되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법이 제대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최지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입니다.
출처: 성폭행 피해자의 가해자 응징...오죽하면 그랬을까? (오마이뉴스 201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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