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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공연음란죄와 길거리괴롭힘(street harassment) 반대행동

공연음란죄와 길거리괴롭힘(street harassment) 반대행동



20148월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공연음란 혐의로 체포되었다. 혐의를 적극 부인하던 그는 cctv 감식 결과에 마지못해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게 되었다. 비웃음을 받는 소위 바바리맨과 권위의 상징인 고위 검찰간부의 모습이 겹쳐지자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사건 직후 김 전 지검장은 자신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며 입원했다. 심각한 우울증, 성도착증, 성선호성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평판이 좋았던 엘리트 남성이 정신병 환자의 모습과도 겹쳐지면서 그의 공적 자아는 한순간에 붕괴했다.

흥미롭게도 김 전 지검장의 행위는 얼마 후 발생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성추행 가해행위와 다르게 읽혔다. 김 전 지검장의 행위는 위계를 이용한 명백한 () 갑질인 박 전 국회의장의 행동과 달리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충동과 욕구를 통제하지 못해”* 일어난, 한 개인의 정신병리적 문제로 이해되었다. 적절하게 성욕을 해소하지 못한 개인의 일탈행동이 질병의 수준으로까지 심화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질환자라는 환자복을 입자, 동정 여론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과도한 업무스트레스, 외로운 관사생활이 원인이라는 추측, 직장과 사회생활 모두를 잃었는데 엄한 처벌은 가혹하고, 치료 의지를 보이고 치료 중이므로 처벌 수위를 낮추자는 의견이었다. 정신질환자는 비정상인으로 사회적으로 낙인찍히고 배제당하기 쉽지만, 환자 정체성은 치료·교정의 대상으로서 일정한 책임면제와 배려를 받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김 전 지검장의 발빠른 입원이 의도한 바다.

검찰간부에서 정신질환자로, 김 전 지검장의 변신에 적극 일조한 곳은 그가 속한 조직이자 기소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검찰이었다. 김 전 지검장은 거리에서 성기노출과 자위행위를 했다. 이는 현행법상 형법의 공연음란죄나 경범죄처벌법의 과다노출로 처벌받을 수 있는 행위이다. 경찰의 기소의견은 공연음란죄를 적용하자는 것이었고 검찰은 이를 두고 3개월 동안 판단을 미뤘다. 유야무야, 제 식구 감싸기로 끝내려 한다는 비판에 고심하던 검찰은 기소의견을 시민에게 묻는 시민위원회를 개최했고 그 결과를 비공개로 함구하다 1125일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처분의 근거는 정신과 의사가 김 전 지검장을 진찰·감정 후 제출한 의견에 따르면 피의자는 범행 당시 오랫동안 성장과정에서 억압됐던 분노감이 비정상적인 본능적 충동과 함께 폭발해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된 정신 병리현상인 성선호성 장애상태였으며 김 전 지검장은 병원에 입원해 6개월 이상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고 재범 위험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성선호성장애라는 면죄부


검찰의 법적 판단에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이는 의학·심리학 전문가의 언어와 권위에 기대 특정 행동을 해석하는 현재의 지배적인 인식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범죄나 사법 영역에서 심리측정과 검사결과, 정신진단서, 의사 소견은 과학, 객관이라는 이름으로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정신의학의 언어가 이번 사건처럼 바로 법적 면죄부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상행동의 원인을 개인의 심리나 특수함에서 찾기에 오히려 치료 명목의 치료감호나 성충동약물 치료 등의 새로운 처벌과 제재를 가하는 근거가 되기도 해왔다. 공공장소에서의 성기노출이나 자위행위가 공연음란죄 혐의를 받을 때는 노출증이나 성도착증이라는 진단명이 붙어 행동의 범죄성과 재범위험성, 다른 성범죄가능성을 증명하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덧붙여 지금까지 공연음란죄 혐의를 적용받은 사건들의 기소율은 85%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소유예를 정당화하기 위해 검찰은 김 전 지검장의 행동이 목격자나 특정인을 향해 범행한 것이 아니며, 노출증에 의한 전형적인 공연음란죄에 해당하는 바바리맨 범행과도 차이가 있는 행동이라며 성선호성장애란 용어를 가져왔다.

성선호성장애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선호성 장애는 성도착증과 동의어다. 성선호성 장애는 국제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기호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고 성도착증은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성도착증이 대중적으로 더 알려졌고 법조계에서도 통용되는 용어인데, 주목할 것은 노출증이 성도착증의 하위 범주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제질병분류기호의 성선호성 장애에 대한 설명은 성도착증을 부제로 달고 있으며 하위 범주로 노출증을 포함하고 있다. 김 전 지검장의 행동이 성도착증의 다른 하위 범주인 소아성애, 관음증, 가학-피학 성향 중 하나라는 것이 아니라면-아닌 것이 확실하다- 노출증과 다른 성선호성 장애라는 검찰의 설명은 어불성설이다. 전문가의 입에서 나온 낯선 용어를 강조하면서, 그것을 의문 없이 그대로 받아 적는 언론을 통해 검찰이 얻고자 하는 바는 명백해 보인다.


공연음란죄 처벌과 정의


성폭력 원인과 해결을 가해자 개인의 심리나 행동에서 찾는 개인화된 인식틀이 지배적이고, 이런 의학/심리학 담론을 상황에 따라 코에 걸었다 귀에 걸었다 하는 사법기관이 있는 현실에서, 김 전 지검장의 행위가 명백한 성폭력으로 강력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얼마나 유효할까? 성폭력 해결을 사법기관의 임무 중 하나로 받아들이게 하고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법 담론에 기대 성폭력 대항논리를 구성하는 것은 성폭력을 사법기관의 한 방 판결로 정리되는 형식으로 협소화시키기 쉽다. 모든 성폭력이 곧 성범죄인 것은 아니다. 성폭력의 대응을 성범죄로서 법적 처벌 위주로 갈지, 다른 방안을 모색할 지는 사안과 맥락에 따라 다르고 논의가 필요하다. 사회적 논의나 고민 없이 바로 성폭력=성범죄로 환원시켜 사법부의 역할만 요구하는 것은 성편향적이고 성통념에서 자유롭지 않은, 개혁의 대상인 곳에 더 많은 정의(definitionjustice의 측면 둘 다)의 권한을 맡겨버리는 꼴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법과 사법기관에 정의의 권력을 쥐어주는 것은- 특히 성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 대개 보수적인 통치 욕망의 실현에 기여해 왔다. 이번 사건에서 논란이 된 공연음란죄는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이라는 법익을 해치는 성풍속에 관한 죄(형법 제 245)로 설명되면서 많은 경우 보수적이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적용되어 왔다. 1994년 연극에서 여배우의 신체노출을 지시한 연출가를 공연음란죄로 처벌한 것, 2010년 가수 지드래곤의 공연 중 성행위 묘사를 공연음란죄로 수사한 것처럼 문화표현물에 대한 일종의 검열로 적용되어 온 여러 사례들을 들 수 있겠다. 공공장소에서의 애정행각이나 옷차림을 풍기문란, 기강 단속의 목적으로 공연음란죄라 처벌해 오기도 했다. 이런 법적용 하에서는 퀴어 퍼레이드나 슬럿워크에서의 거리 행진도 공연음란행위로 단속될 수 있다. 따라서 김 전 지검장의 행동이 성폭력이라 말하는 것과 이를 공연음란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 사이에는 더욱더 섬세한 줄타기가 필요해 보인다.

섬세한 줄타기가 필요한 이유는 이 사건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이번 사건의 여론에서 김 전 지검장의 행동이 다른 성폭력에 비해 지위나 권력관계를 이용한 것이 아니며 피해의 정도나 해악이 덜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권력관계가 소거된 이상욕망의 문제라는, 정신의학의 설명이 더 힘을 얻은 것인데 과연 그러할까?

이 사건에서 권력관계는 없다기보다 유동적이다. 박 전 국회의장의 성추행 사건과 다시 비교해보자. 박 전 국회의장의 성추행 사건에는 서비스 구매자-제공자, 할아버지뻘 되는 나이 차, 전 국회의장과 캐디라는 사회적 지위 차까지 여러 요소들이 확실하고 고정적인 위계를 드러냈다.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의 피해자 한 명과 가해자 한 명도 명백하다. 이 뚜렷한 권력관계, 즉 갑-을 구도에서 갑의 잘못은 더 부각되어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그런데 김 전 지검장의 성기노출과 자위행위는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도로에서 행해졌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한 명으로 특정되기보다는 불특정적이다. 원래 이것이 공연음란죄에서 말하는 공연성의 의미다. 이 불특정 목격자들에게 피해의 의미나 피해자로서의 정체화는 동일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충격적이거나 두려울 수 있지만 누군가에는 똥밟은 것처럼 불쾌할 순 있어도 심각하지 않은 해프닝일 수 있다. 또는 장난, 조롱으로 맞받아치거나 맞서 싸울 수도 있다. 김 전 지검장의 행동이 놓인 상황의 권력관계나 대응은 고정적이기보다는 유동적인 측면이 많다. 그렇기에 공연음란죄로 고정시켜 범죄화하는 것은 당사자의 불특정성과 대응의 유동성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닌 것 같다.


길거리괴롭힘 반대행동의 시사점


어떤 다른 대응과 언어가 가능할까? 법과 전문가에만 맡기지 않고 새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문제의 정의(definition)와 그 해결의 정의(justice)는 어디에 있을까? 해외의 움직임을 소개하며 단초를 찾아보고자 한다.

최근 해외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낯선 이에 의해 입게 되는 경멸이나 모욕을 담은 눈짓이나 욕설, 외모비하 같은 언어적 괴롭힘, 원치 않는 신체접촉이나 촬영, 성기노출, 쫓아오기 등의 피해를 길거리괴롭힘(Street Harassment)’으로 문제제기하고 집단적 해결을 모색하는 풀뿌리운동이 활발하다. 2000년대 중후반 미국의 여대생, 지역 활동가 등 다양한 배경의 젊은 세대들이 주축이 돼 시작한 길거리괴롭힘 반대행동은 할러백(www.ihollaback.org), stop street harrassment 모임 등을 기반으로 현재 26개국 79개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풀뿌리 행동은 다양한 길거리괴롭힘 사례들을 최신 미디어기술(스마트폰 앱, 플리커, youtube)을 활용해 공유하고 대처법, 해결법까지 나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최신기술 활용이라는 새로움과 더불어 집단적 서사와 스토리텔링을 통한 의식고양을 강조하는 방향은 소수자에 대한 전통적 사회운동 방식과 이어져 있다. 전통적인 것은 현상 자체에도 있다. 여성, 유색인, 장애인, 성소수자처럼 사회적으로 주변화되기 쉬운 집단에게 가해지는 공적 장소에서의 괴롭힘은 다양한 방식으로 항상 있어왔다는 뜻이다.*** 존재했지만 하나로 엮여 문제화되고 대응되지 않았던 현상들이 길거리괴롭힘이라는 개념 아래 모이면서 이 개념을 정의하고 경계를 설정하는 것도 운동의 한 영역이 되고 있다.

길거리괴롭힘은 공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성희롱의 한 형태로 정의되기도 하고 젠더를 기반으로 한 폭력이자 인권침해의 한 형태로 설명되기도 한다. 행동과 주체를 확장하려는 이 운동은 길거리괴롭힘의 실태와 영향에 관한 데이터를 생산하고 축적하는 방식으로도 뻗어가고 있다. 보고들에 따르면 미국에서 절반의 여성과 1/4의 남성이 어린 시절부터 여러 번에 걸쳐 길거리괴롭힘을 경험하며, 이로 인해 경험자가 발생 장소를 회피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등 다양한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와 도시에서 작성된 보고서들도 비슷한 상황을 전하고 있다.

문제를 스스로 발굴해 정의하는 것, 목격자이자 당사자로서 여성과 소수집단의 대응역량을 기르려는 것, 오래됐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것, 길거리괴롭힘 반대행동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다. 젠더 권력관계를 매개로 일어나는 일상적 폭력, 괴롭힘, 차별은 개인과 사회에 자연스럽고도 강고하게 침투해 있기에 범죄에 대한 법과 의학의 목소리만으로 풀어나갈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도 공적 공간에서 김 전 지검장 같은 행위가 성폭력이 될 수도 있는 조건, 즉 젠더권력관계는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취약한 피해자성(‘충격을 받은 신고 여학생’)으로 화석화되었다. 유동하는 젠더권력관계를 시야의 중심으로 끌어오고 변화하게 만들 수 있는 우리의 움직임이 다시 중요해지는 때이다.
 

경향신문 916일자 기사, “[표창원의 단도직입]‘() 갑질을 멈추게 하라

** 예를 들어 조윤오, 이미정(2009)성범죄자의 성적 일탈경험과 자기합리화에 관한 연구(한국 공안행정학회보, 34)같은 연구에서는 성도착 증세를 보이는 성범죄자들이 증세를 보이지 않는 일반 성범죄자보다 동종 전과 횟수와 다른 성범죄 범행률이 높기에 광범위한 종류의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고, “성도착자들의 잠재적 위험성은 대단히 크다고 주장한다.

*** Jill P. Dimond (2013), “Hollaback! The Role of Collective Storytelling Online in a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CSCW' 13

유현미 <반성폭력> 9(2015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