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뒤집기 모의법정 후기
<2016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뒤집기> 모의법정이 2016년 4월 28일 오후 3시에 이화여자대학교 모의법정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영화감독에 의한 10대 여성 성폭력 사건 대법원 무죄판결 다시 짚어보기"라는 부제를 가진 이번 모의법정은 실제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 사건"을 재구성하였습니다.
모의법정이 모티브로 삼은 실제 사건은 1심에서 징역 12년, 2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후, 2014년 11월에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되어 2015년 12월 파기환송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바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법원과 고등법원의 판결에 분노하였고, 이 판결이 이후의 다른 판결들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340여개의 관련 단체들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서명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으로 대응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본 모의법정은 온라인 사전 신청을 통해 90여분이 신청해주셨고,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표현해주셨습니다.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 피해자, 가해자, 배심원단 등 총 출연자 20명과 방청인 100여명이 함께 해주신 본 모의법정은 대안적인 판결을 기대하는 마음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였습니다.
공소요지 및 모두진술
증거조사
최종의견 및 최종진술
배심원단 논의 및 평결
최종판결
모의법정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를 가진 재판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는 단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법 제도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성폭력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의 내용을 토대로 하였습니다.
우선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서 증언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각 법원에 마련되어 있는 증인지원실을 활용하여 피해자가 가해자나 가해자의 가족 및 측근들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실제로 증인지원실은 재판부 출입구와 멀지 않도록 배치되어 있고, 증인 신문 시에 법정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법정 증언을 마치고 나서도 법정에서 심의되는 현장을 지켜볼 수 있으며, 피해 내용을 회상시키는 극한 스트레스 상황인 증인 신문 후 심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 피해자가 원하는 경우, 피해자 증언 시 피고인인 가해자에게 증언 장면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도 법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모의법정에서는 이와 같이 법적으로 마련되어있는 피해자 보호 및 지원 시스템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그 동안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겪었던 힘든 과정이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제도 뿐 아니라,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법조인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배려도 모의법정에서 다루었습니다.
재판장: 증인, 그동안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수차례 출석하여 증언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재판부가 증인을 다시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을 양해해주면 좋겠습니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여기까지 직접 나와 주어서 고마워요. 당시 상황을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는 만큼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주면 되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도록 하세요.
재판장은 증인 신문을 하기 위해 법정 내 증언석에 앉은 피해자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는 실제로 한 법정의 판사가 보여주었던 장면을 재구성한 것이었습니다. 자칫 비현실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으나, 실제로 이러한 법조인들의 태도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실생활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내적 혹은 외적) 억압이나 차별, 죄책감 등을 해소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파급효과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한 판사가 이러한 말을 건네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기획단에서 함께 기획하고, 대본 작업 뿐 아니라 온 마음으로 애써주신 기획단 유한결님, 윤이경님, 정현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멋진 영상 만들어주시고 당일 전체 촬영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준모님께도 감사드려요.
피해자와 가해자 역할을 맡아주신 전문 연기자 홍유정님과 정완희님을 비롯하여 맡겨진 역할을 열정적으로 연기해주신 재판부와 배심원단의 모든 출연진 여러분께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당일에 직접 참석해주신 많은 분들과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모의법정이 가능해질 수 있도록 상담소를 믿어주신 피해생존자와 가족, 대리인 분들께 두 손모아 감사드립니다.
모의법정 후기를 마무리하며, 배심원으로 참여해주신 꾸미님, 강지희님, 진엽님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이번 모의법정이 유의미했던 이유는 첫 번째로 피해자 중심주의가 어떻게 법정에서 구현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여러 번 법정을 오가며 피해를 진술해야 했던 점 충분히 알고 있고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힘든 진술해야 하겠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에게 건넨 재판장의 이 첫 마디는 피해자의 마음뿐만 아니라 법정에 와 있는 많은 방청객들의 마음까지 녹여줄 수 있을 만큼 따뜻했다.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해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을 갖고 있기에 이를 배려하여 피해자의 요청대로 피고인을 잠시 법정밖으로 나가 있게 해 준 점, 피해자에게 최종진술을 스크린과 마이크를 통해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점 등은 피해를 당했음에도 사회적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지지의 역할을 해냄으로써 피해자의 위축된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수사과정과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에 대해 오히려 비난을 받거나 거짓말 혹은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수사관들과 법관에게 혼이 나기도 한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현실에서 이런 피해자의 처지를 이해하는 의식있는 법관은 만나기 힘들다고 생각되기에 작위적인 멘트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는 실제 법정에서 있었던 실존하는 법관의 멘트를 모의법정에서 재현해 낸 것이라는 점이 더욱 감동적이었다.
또한 대법원의 판결이 왜 무죄로 귀결되었는가를 명확히 가시화하여 대중에게 전달한 점 역시 유의미했다. 피해자의 주장(사랑한다는 메시지나 서신 등은 모두 피고인이 시켜서 한 것이다)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증거는 채택되지 못했고, 가해자의 주장(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였다)을 뒷받침하는 서신과 메시지(피해자가 작성)는 증거로 채택되었다. 바로 이 점이 대법원 판결을 무죄로 이끌었음을 모의법정은 정확히 대중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증거의 채택에 있어 판사의 재량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방청객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법관의 평소사고방식은 판결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이끄는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실제 피해자 측 관련인의 진술에 의해 방청객들은 대법원에서 피해자 측의 증거를 채택하지 않은 이유까지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녹취록의 양이 너무 방대해서 이것을 증거로 채택하게 되면 그 업무량 또한 어마어마해진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 하나로 인해 다른 사건들에 배당할 수 있는 인력과 시간을 많이 희생해야 한다는 점은 물론 중요하지만 평생을 고통속에 살아가야 하는 어린 피해자의 피해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한국성폭력 상담소의 모의법정은 많은 방청객들의 참여와 관심 속에 치러졌다. 모의법정에 참여한 실제 피해자 대리인인 변호인은 피해자의 ‘주관적 공포’ ‘학대순응증후군’등을 설명하며 피해자의 처한 상황이 충분히 피해자의 행동들을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이전 판결을 뒤엎어줄 것을 기대한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부탁했다. 이번 모의법정이 피해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다갈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 피해자의 피해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고 본다. 또한 올바르고 정당한 판결을 통해 다시는 억울한 피해를 당하고도 사랑하는 사이라는 미명하에 강간이 정당화 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강지희님 (배심원단 중 연예계 종사자 역)
가끔가다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서 내가 알고 있던 상식과 어긋나는 판결을 봅니다. 법질서를 지킨다는 기사,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기사들은 지켜보는 저의 입장에서도 가끔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건가? 다른사람들이 보았을 때, 이 판결이 상식적인가? 라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이 사건도 그렇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직위를 악용하여 강요한 성폭력’사건이 명백합니다. 모의 법정을 지켜보고, 참여하면서 저는 제 생각이 저만의 생각이 아니구나 느꼈습니다. 특히 마지막 배심원들의 의견들은 대본에 씌여진 말이 아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었습니다. 이런 자리에 제가 함께하게 되어서 너무 영광이었고, 아직 사회에는 정의와 상식이 살아있구나 느낍니다.
이번 모의법정처럼, 모두가 공감하는 이런 순간이 모여 현실적인 힘이 생기고, 고통받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해성사와 함께 후기를 시작해봅니다. 과거의 저는 모두가 분노하고 슬퍼했던 일들에 함께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는 그 나머지를 합친 만큼의 분노를 느끼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뒤덮을 만큼의 무력감에 항상 멀리서 관망만 하던 그런 방관자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치 운명의 여신의 손짓에 이끌리듯 여성주의 강의와 세미나를 접하게 되었고, 살면서 처음으로 '사회의 일원으로서 무언가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잊을 수 없던 그 사건을 가지고 판례뒤집기 모의법정을 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기회로 배심원단을 하게 되었고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것이지만서도, 이런 뜻 깊은 자리가 있는데 그냥 방청도 아니고, 사건 피해자 분께 지지의 뜻을 직접 비출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다니! 보내주신 대본을 읽으며 사건의 정확한 정황을 알게 되고 다시 한 번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과거와 다른 점은, 이번엔 어딘가로 숨어들지 않고 이렇게 감사하게도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는 거였네요.
모의법정 당일 날, 제가 숨쉬고 있던 공기 자체가 새롭게 바뀐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현장을 준비하셨던 모든 스태프 분들의 열의와 그 만큼의 고생과 긴장을 두텁게 베이스로 깔고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따로 또 같은 마음을 첨가한 그 날의 공간, 그 공기를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확신했습니다. 이 뭔가 뜨겁고 응축된 그 날의 그 기운이 분명 큰 바람을 일으켜 이번 사건을 포함한 많은 사건들을 '뒤집을' 수 있을 것임을, 더 나아가 뒤집을 필요가 없을 판례를 만들 것임을요. 남은 건 그 공기와 분위기를 더 퍼트리는 것이겠지요.
저는 이번 자리에서 느낀 감동과 흥분을 기폭제로 삼아, 더이상 방관하지 않을 추진력을 얻었습니다. 저는 이제 함께 분노하고 슬퍼할 수 있는 사회 속의 사람이 되는 것이 이제 더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서 정말 숨 한번 쉴 때마다 일어나는 모든 폭력들에 제대로 맞붙을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 날 그 모든 것들을 느끼게 해주신 모든 분들과, 모든 것에게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판례뒤집기 해당사건의 피해자 분께 제가 말하게 되었던 그 메세지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또 자리를 기획하시고 현장 앞 뒤에서 동분서주 고생하셨을 감이님을 필두로 한 판례뒤집기 사업 기획단 분들께 정말 무한 감사드립니다. 후기가 ‘저’의 이야기로 점철되어 버린 것 같아 약간은 부끄럽지만, 다음에 분명 있을 많은 자리에서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 위한 어떤 선언으로서 봐주시기를 바라며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담소는 지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상퇴치 비법수행 갸갸갸 5주의 기록 (0) | 2016.05.18 |
---|---|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캠페인과 인권/시민·사회/정당 기자회견 후기 (0) | 2016.05.17 |
[정색포럼] 성범죄의료인 취업제한 위헌, 어떤 의미인가를 진행했습니다! (0) | 2016.05.02 |
[카드뉴스]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한 오해2 : 군대 내 성관계는 처벌해야 하는 것 아냐? (0) | 2016.04.22 |
[카드뉴스]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한 오해1 : 성폭력을 처벌하는 법 아냐? (0) | 2016.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