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 선포 기자회견 "평등한 세상에 나중은 없다!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
상담소2017. 9. 14. 11:49
[후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 선포 기자회견
"평등한 세상에 나중은 없다!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
110개의 시민/사회/인권단체들이 모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올해로 10년째 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차별금지법은 중요한 인권기본법으로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입법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수립한 100대 국정과제에 차별금지법제정은 누락되었고, 20대 국회에서도 시급한 현안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제정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깊이 파고들어있는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인권이 살아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미루어둘 수 없는 필수과제입니다.
110개의 단체가 모인 만큼 많은 분들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한 열의와 각오를 다지는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대한 피해를 구제하고 미리 예방하는 법입니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법입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많은 기독교인들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촛불혁명으로 이루어낸 모두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박근혜탄핵은 사회 곳곳의 적폐청산이 필요하며 이를 실천해야한다는 요구가 터져나옵니다.
종교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하여 수년 동안 보수/근본주의 기독교계가 선두에 나서서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로 법제정에 반대하는 단위들이 애쓰지않아도 될 정도라고 합니다.
이미 동성혼 동성애 반대 프레임으로 개헌을 가둔 채 국회 앞에서 일인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소위 개신교의 8개 교단 이단대책위원들이 성소수자인권을 목사가 옹호한다고 이단 으로 낙인을 찍습니다.
교단 법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거나 지역 인권조례 지키기에 참여하고 있는 목사를 고소합니다. 교계 내 단속과 세력 과시를 연일 시전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지속적으로 사회 각 부문에 요구되고 있는 적폐 청산과 사드배치 강행을 비롯한 북미, 그리고 중국과의 갈등 상황 속에서의 전쟁위기 고조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동성애·동성결혼 반대만이 시급한 과제인데 그 이유는 ‘북한 김정은의 핵미사일보다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실제 그래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술수일 뿐 입니다
그들은 한국의 5만여 교회 1천만 성도들을 대표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2017년의 한국 기독교는 끊이지 않는 목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 세습, 돈 문제로 인한 온갖 추문, 거기에 더해 성소수자 인권 옹호에 대한 중세의 마녀사냥식 이단 논쟁 등 기독교에 대한 신뢰가 이 사회에 남아있을까 싶을 만큼 부끄러운 일들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누구에게 ‘대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는 말입니까?
가독교를 망치고 있는 사람들이 무얼 대표합니까? 차별조성 대표주자들 입니까?
각 교단과 교계의 의견수렴 없이 대표직이라는 직함 하나로 권력을 휘두르는 모양새는 교권세력, 즉 해방 이후부터 쌓아올린 종교적 ‘기득권’도 적폐청산 대상임을 자인하는 꼴이요, 한국 사회의 중차대한 전환의 시기에서 스스로 위기의식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명령하달 식으로 서명하라면 다 참여하는 구조에서 비록 숫자로는 밀릴지모르지만 참 신앙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고 이들의 영향력이 훨씬 더 큽니다.
이들의 주장은 종교의 권위를 빌어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의 강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성소수자 인권을 억압하는 것만이 아닌 실질적으로는 ‘여성인권’ 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난민과 이주민의 인권마저도 혐오의 날을 세워 왜곡하고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 존재하지만 배제되어 온 사람들, 비가시화 되어 있는 다양한 차별사유들을 단순화 시킬 뿐 아니라 HIV/AIDS와 같이 의학적으로도 증명되어 이미 국제적인 기준과 매뉴얼이 통용되고 있는 사안에도 동성애/성소수자혐오증으로 인해 과학작이고 의학적인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오로지 모든 것이 동성애자들 탓이므로 그 대안은 오직 동성애 박멸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기독교 작폐세력으로 인해 각 지역마다 인권조례조차 힘든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신앙을 내세워서 차별을 조장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런 가운데 교계의 밀어부치기에 속수무책인 문재인 정부는 무얼하고 있나?
국회의원, 정치인 중에는 종교계의 적폐세력과 오랜 세월 야합해온 이들이 있습니다.
차별을 금지하자고 할 때 사회적합의는 적용되지않습니다. 인권선언이 필요합니다.
문재인 정권은 종교계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 적폐청산 대상이 내미는 썩은 동아줄을 언제까지 잡고 있을 것인가.
그들에게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사회적약자를 희생시키는 우를 범하지말고 차별에 맞서는 확실한 입장표명과 실천으로 촛불혁명의 참의미를 배반하지 마십시오.
이 사회의 불평등 근절은 차별금지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호소합니다.
성경에는 차별하면 안되다는 선언이 분명히있습니다 성경에는 차별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성이라서 장애인이라서 외국인이라서 노예라서 차별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차별하지 말라 차별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말씀에 귀기울여야하나.
하나님의 사랑은 선별해서 하는 사랑이 아니다. 배제하고 쫓겨난 사람들을 포용하고 껴안는 것이 예수의 사랑입니다.
예수의 사랑을 훼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섭리는 진심으로 이웃을 내몸처럼 아까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차별과 불이익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들로 인해 드러날 것입니다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1948년에 채택된 UN 인권 선언에는 어떠한 구별도 없이 모든 사람이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명시 되어 있습니다. 또 한국 헌법에도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여러 가지 이유로 차별 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권리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불편한 장애인들부터 성소수자,이주민 이주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장애인동지들이 몸이 불편하고 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고 해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정부도 그분들의 생계를 유지할수 있도록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동지들도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성소수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의 존재조자 인정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주민 이주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경제적으로 열악한 나라에서 왔다고 해서 여러 차별과 무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한국 말을 제대로 못해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이주민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날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활동들을 할수 없도록 법제도들이 탄압하고 있습니다. 모든 법제도들을 차별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로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할수 없습니다. 사업장 변경도 할수 없고 강제 노동을 견디지 못해서 자살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폭행 폭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부당한 일들을 당해서 구조를 요청할 때 관련 기관들이 제대로 일 처리 안 해주 는 경우기 많습니다. 폭행을 당해서 이주노동자가 신고를 할 때 상처가 있어야만 경찰이 신고 접수를 해줍니다. 상처가 없으면 신고조차 안받아줍니다. 이렇게 기존에 있는 법들도 적용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혼 이주 여성들의 차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주여성이 도망간다는 이유로 항상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귀화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영주권도 마찬가지입니다. 품행을 단정해야합니다. 문제가 생겨서 이혼을 하면 결국 미등록체류가 됩니다. 이것은 남성 결혼 이주민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슬림들이 한국에서 테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고 해서 항상 감시하고 있습니다. 테러방지법을 통과 시키면서 무슬림과 난민신청자들을 너무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난민들은 입국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난민 인정율도 아주 낮습니다. 하지만 난민들도 이땅에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지금 정부가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서 영주권 전치주의를 실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귀화를 신청하기 위해 영주권을 먼저 따야합니다.
우리 이주민 이주노동자들도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이 사회에사 모든 권리를 누리면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회에서 늘 약자입니다. 우리를 약자로 만든 것은 한국 정부입니다. 경제상황이 열악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 이주노동자들에게 차별이 더 심합니다. 우리의 인권 노동권은 돈으로 비교될수 없다는 것이 한국 정부는 알아야합니다. 이제 한국 사회에사 차별을 없어야합니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합니다. 나라다운 나라 만들겠다 라고 말한 문제인 태동영, 정부와 국회는 우리 요구를 들어줘야합니다 .우리를 실망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는 서명운동 기자회견 시작으로 모든 투쟁 할 것입니다.
웅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공동운영위원장)
10년을 요구하고 또 요구하겠다고 선언하러 나왔습니다. 무엇이 변하고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적폐청산과 사회변화의 거대한 요구가 만든 정부라고 하지요. 하지만 문재인정부의 100대 약속에 차별금지법은 없습니다. 국회도 묵묵부답입니다. 아니, 국회는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했다는 민원에 굴복해 헌법재판관 임명을 부결시켰습니다. 그러고도 자기네 정당이 결정권을 가졌다고 득의양양한 자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뻔뻔하고 후안무치하게 만들었습니까.
유사 이래 동성애가 이렇게 정치적으로 얘기된 적이 없습니다. 정당의 수장이라는 자들이 직접 동성애・동성혼 반대를 외치고 나섭니다. 수천 수만 명을 거리에 결집시켜 차별을 선동합니다. 반인권적 차별선동이 하나의 의견이라도 되는 양 공론장을 삼킵니다.
이들은 성소수자 인권과 이주민의 존재 자체가 대중의 안위를 위협한다고 외칩니다. 이런 발악이 나오기까지 저들은 그간의 변화를 위기로 느꼈을 것입니다. 세를 다시 모으기 위해 변화의 민감한 고리를 건드려 적폐를 결집시켜야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소수자의 인권은 건드려도 손해볼 것 없다는 것이 저들의 계산이었을 것입니다.
변화의 시점에 정부 역할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어떤 의지와 태도를 보였습니까. 성소수자는 차별받으면 안되지만, 인권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반인권적 차별선동을 인권에 대한 정부의 방관과 위선에 연결시켜 혐오를 정당화하는 가교일 뿐입니다. 인권기구를 강화하는가 싶지만 혐오발언을 일삼는 이를 공직에 앉히고, 이제는 반동성애를 외치는 뉴라이트 창조과학회 인사를 장관으로 영입하려고 합니다. 성소수자 인권의 문제는 반반으로 나누고 나중에 듣겠다면서, 적폐인사를 추천하며 다양성 운운하고 두둔합니다. 소수자의 인권을 위한 어떤 자리도 내어주지 않으면서 시민들이 반대하는 사드 추가도입을 강행했습니다. 인권 앞에 합의를 핑계대며 한발 물러난 대통령은 안보를 내세워 공권력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위기를 방관하며 집단적인 혐오를 용인하는 사회에 언제까지 목숨부지 해야합니까. 왜 이 문장을 지금도 반복해야합니까.
이것이 우리가 10년이 넘도록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법조항을 요구하는 과정은 시민들을 위협하는 안보의 강박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 알리고 설득하는 시간입니다. 최소한의 균형마저 잃어버린 정부와 국회를 비판하고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립시다. 정부는 차별의 구조를 지속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차별의 현장을 계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예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인권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내놓아야 합니다.
여전히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이주민, 청소년은 사회에 불편을 주고 위협이 되는 이들로 지목됩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혐오의 표적이 되는 것에 전전긍긍하지만은 않습니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사회에 불편한 존재고 그래서 위협이 된다면, 기꺼이 불편해질 것입니다.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에 참여하고 개입합시다. 불편함의 낙인을 찍고 위기를 조장하며 소수자 인권을 배제하는 사회를 변화시킵시다. 차별금지법은 단지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로부터 보호하는 법조항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권 보장 너머 평등한 삶을 만들 수 있도록 사회를 변화시키는 노력에 참여하고 함께할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 제목을 들어보신 적 있을 텐데요. 사람들이 차별에 찬성하게 되는 것은, 이 사회에서 끊임없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당화된 차별은 차별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일상적으로 하대를 당하고 무시를 당하고 여러 논의 과정이나 권리에서 배제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청소년들의 삶부터 차별로 가득차서 그것을 당연하게 느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학교는 또 어떤가요? 성별에 따른 편견을 담고 있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학교성교육표준안은 대표적 사례일 뿐입니다. 성적으로 차별을 하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하면서, 그러한 차별은 능력에 따른 정당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당화된 차별은 또 다른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얼마 전 SNS에서 화제가 된 사건이 있는데요. 한 식당에서 청각장애인 손님의 예약을 거부하면서, '노키즈존' 같은 영업 방침이라고 설명을 했던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편견을 가지고 소수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은 익숙해지고 확대되는 것입니다.
물론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이런 차별들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당화되는 차별들에 맞서 싸우고 바꾸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있어야만 좀 더 쉽게 무엇이 차별이고 무엇이 안 되는 것인지 논의하고 개선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차별과 배제가 아닌 여러 사람들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청소년들이 차별받지 않고 차별에 익숙해지지 않고 살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데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