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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친밀한 관계를 위한 적극적 합의 건강 검진

지난 9월 3일 이안젤라홀에서는 <친밀한 관계를 위한 적극적 합의 건강 검진>워크숍이 있었습니다. 몸 상태가 건강한지 정기적으로 검진해야 하듯이 친밀한 관계에서 적극적 합의를 잘 하고 있는지도 일상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적극적 합의의 다섯가지 원칙을 참여자들과 파트너들은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진단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1.적극적 합의 레이더 차트 

 

 

첫번째는 일상에서 적극적 합의 점수와 성적 상황에서 적극적 합의 점수 각각 다른 색깔로 레이더차트에 표시해 보는 활동이었습니다. 


참여자들은 대체로 일상에서의 합의의 원과 성적 상황에서의 합의의 원이 비슷한 가운데 성적 상황에서의 원이 조금 더 작아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두 가지 특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첫 번째는 일상과 성적상황에서 합의의 방식이 유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상에서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는 성적 상황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가사노동 분담에 관해 서로 각자의 몫이 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내가 힘드니 당신이 잘 ‘도와줘야’한다고 감정에 호소했던 경험은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않을 때 성적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성적 주체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서 관계맺게 된다는 것과 연결되었습니다. 청소년으로서 학교와 가족 내에서 쉽게 통제의 대상으로 여겨지며 의사 표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험을 나누어준 한 참여자는 ‘합의할 수 있는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남겨주었습니다. 


성적상황에서 그 격차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원이 더 작아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명시적으로 말하기 어렵고 뉘앙스나 분위기를 봐야 했던 경험, 나이나 경험의 차이에 따라 정보가 불균형한 상황에서 혼란스러웠던 경험, 성적 상황이 ‘물 흐르듯 연결’된다고 여겨질 때 모든 과정을 합의의 영역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 등을 나누면서 성적상황에서의 레이더가 작아지는 원인을 진단해 보았습니다. 사례를 두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었는데 예를들어 “~가 원하는 대로 해요”라는 말은 언뜻 상황의 주도권을 나에게 주는 것 처럼 보이지만 듣는 사람에게 때에 따라 어떻게 ‘부담의 언어’로 다가오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나에게 명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말인지, 상대방의 상태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줄 수 있는 말인지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2. 적극적 합의-감정 그래프 

 


그래프 각 영역에 해당하는 경험과 그 이유를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는 활동이었습니다. 각자 내가 그 상황에서 동의한 이유, 동의하지 않은 이유, 좋았던 이유, 싫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며 포스트잇을 적어내려갔습니다. 그런 다음 마이너스 경험을 플러스 경험으로 바꾸고 싶다면 무엇이 필요할지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꾸고 싶지 않은 경험이 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도 추가로 적어보았습니다.


감정 그래프 프로그램은 동의 하나만의 기준이 아니라 어떤 기분이나 감정이 들었는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지도 고려하며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동의를 단순히 예/아니오가 아니라 어떤 상황과 맥락이 있었는지 세세하게 나눠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참여자는 동의했지만 생각만큼 즐겁지 않았던 상황을 적고 그럼에도 바꾸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여주셨는데 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동의한 경험이 당시 나에게는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생각과 다른 경험을 하더라도 동의했을 때 감당할 수 있다는 통제력이 나에게 있다는 점은 중요하게 짚어보아야 할 지점이었습니다.


제가 참여한 조의 그래프를 함께 살펴보며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여러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는 친밀한 관계에서 오히려 시간을 쌓아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경로가 정해져 있어 새로운 실험을 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두번째는 상대방의 상황을, 거절을 알아차리기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나에게 거절의 권리가 있고 그걸 실행하는 것만큼이나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실에서는 동의가 강조되는 순간에도 거절을 받아들이기/알아차리기에 대해 잘 이야기가 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 참여자는“거절하면서 논리적인 답변을 요구받아왔다. 사실 나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거절의 이유는 충분한데 그것을 알기 어려웠던 것 같다”라고 말한것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거절을 말하기’ 이토록 어려울 때 동의가 잘 이루어지려면 단순히 의사표현을 잘하는 법이 아니라 ‘권리로서 동의’의 조건들이 더욱 말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성적 상황에 스며있는 ‘포르노적 상상력’때문의 나의 의사나 나의 행동이 왜곡되었던 경험들을 나누면서 ‘뭐가 즐거움인지 알아야 뭐가 폭력인지도 알 수 있다’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활동을 마치고 참여자들 소감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것으로 워크숍 마무리되었습니다. 돌아가시는 길 참여자마다 자신의 친밀한 관계를 돌아보며 새로운 실마리들을 선물처럼 안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