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이슈가 전국을 휩쓰는 지금,
'성폭력 없는 사회'라는 상담소 활동가들의 희망을 이 광풍의 끝자락을 붙잡고 불태워봅니다.
그 시리즈 두번째는 <장애여성공감>이 본 '영화 도가니' 이야기입니다.
도가니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우리는 민수와 연두, 유리와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을까요?
'성폭력 없는 사회'라는 상담소 활동가들의 희망을 이 광풍의 끝자락을 붙잡고 불태워봅니다.
그 시리즈 두번째는 <장애여성공감>이 본 '영화 도가니' 이야기입니다.
도가니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우리는 민수와 연두, 유리와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을까요?
‘도가니’를 넘어 변화될 세상을 꿈꾸며 장애여성공감이 보내는 편지
글: 배복주(장애여성공감 대표)
영화 ‘도가니’ 보셨습니까?
영화 ‘도가니’에 대한 이야기와 수많은 정보들이
연일 넘쳐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분노하며 재수사를 촉구하고
법 제/개정을 서두르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건 발생 7년 동안 언론이 보여준 관심보다,
영화개봉 후 몇 주 동안 보여준 관심과 기사가 더 많습니다.
엄청난 말과 글들 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이슈가 되고 이를 통해 변화가 이루어지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뭔가 아쉽고 불편한 생각이 듭니다.
이글은 ‘도가니’를 넘어서서 우리가 같이 이야기해 보아야할 것들에 대해
장애여성공감이 여러분께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십분의 일 혹은 십분의 구
장애여성공감 부설 성폭력상담소는 장애인성폭력 상담과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아, 이런 단체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계시지요?
지금 ‘도가니’를 통해 현실을 알고 분노하고 있는 여러분 곁에서
2001년부터 현재까지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묵묵하게 도가니 속의 연두, 유리, 민수를 만나고 있었답니다.
상담소가 일상에서 만나고 있는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는 어쩌면 도가니 속 연두처럼
용기 있게 말하기도 하고, 유리처럼 겁에 질려 오줌을 지리기도 하고, 민수처럼 분노에 치를 떨기도 합니다. 그들의 성폭력 경험을 듣고 우리는 인호처럼 갈등하고 힘들어 하면서도
그들의 손을 꽉 잡고 경찰서, 검찰청, 법정에 들어섭니다.
그럴 때 마다 피해자들은 우리의 손을 꽉 잡기도 하고 뒷걸음질 치기도 합니다.
성폭력 피해 당시 경험한 두려움과 별개로 또다시 시작될 공포를 느끼는 걸까요?
세상과 소통해 본 경험도, 자신의 말에 지지받은 경험도, 눈 맞추고 고개 끄덕여주었던 사람도 없었던
피해자들에게 주어질 거대하고 낯선 미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침묵하거나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만의 언어는 이해받지 못하고,
온전히 ‘사실’을 논리적이고 ‘신빙성 있게’ 진술 해야만 하는 미션이 주어집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 동안 지속되는 수사․재판 기간 동안
낯선 사람들의 어색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에 지속적으로 대답해야 합니다.
그것도 일관되고 신빙성 있게......
장애인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이런 과정은 어렵고 힘들고 지치는 일입니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포기하기도 하고 침묵하기도 하며, 보호자들은 합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환호하거나 안도하는 가해자들의 표정을 보게 되지요.
마치 도가니의 교장과 행정실장, 박보현 교사처럼요.
영화를 보신 여러분들도 지금 너무 놀라고 분노하고 계시지요? 당연합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가 ‘도가니’ 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노하는 사회와 여러분들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 속에서 연두, 유리, 민수와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까?
우리 사회는 가족으로부터 버려지고 사회로부터 외면 받은 장애인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장애인생활시설을 운영합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장애인생활시설은 지역사회와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 곳에 세워집니다.
그리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돌봐주는 몇몇의 ‘선의로운’ 사회복지 종사자들에 의해 성실하게 유지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장애인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안심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장애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좋은 시설이 과연 있을까요?
시설’은 누구에게 좋은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눈에 안 보인다고, 드러나지 않는다고,
우리는 어느 순간 그들의 존재를 모르거나 다르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단체는 사무실을 이전을 위해 여기저기 이사 갈 장소를 알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적당한 공간을 물색한 후에 계약을 하기로 하고 활동하는 장애여성들과 함께
이사 갈 장소를 방문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건물주가 계약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장애인단체’라서 여러 가지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고,
먼저 입주한 세입자 측에서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기가 막혔죠......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고 있답니다.
‘분노’를 넘어 함께 살아갈 준비가 필요합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이 사회에서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경쟁이나 도전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어떻게 현실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정상’사회를 유지하고 하고 있는 ‘정상’적 사람들의 동정과 상식에 의존해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답니다.
지금 도가니 때문에 분노하는 우리가 다른 상상을 할 수 있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차별하고 외면한다면 여전히 도가니는 ‘분노’ 일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기억에 사라질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남게 될 것입니다.
※ 본 글은 장애여성공감 홈페이지 (www.wde.or.kr)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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