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사건
“우리는 끝나지 않았다!”
지난 12월 6일(수) 오후 2시부터 본 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 주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대법원이 27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연예기획사 대표가 15세 여중생을 성폭력한 사건에 “무죄 확정!” 판결(2017. 11. 9)을 내린 사건의 의미를 짚어보고, 다양한 측면에서의 쟁점 및 대안을 논의하고자 마련되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각 상담소 활동가 및 일반시민, 학생, 기자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본 사건은 2011년 발생하여 2012년에 고소된 건으로 1, 2심에서 각 12년, 9년형의 유죄판결이 났으나, 2014년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파기환송을 했다. 파기환송심에서 무죄판결이 났고, 최근 재상고심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2015년 10월23일, 전국의 340여 단체들이 이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성폭력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피고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법원과 우리사회에 피해자의 경험과 관점으로 이 사건을 볼 것을 주장해왔다. 그동안 공대위에서는 피해자지원 및 1만인 서명운동과 57회의 릴레이의견서 송부, 3차례에 걸친 기자회견 등을 했다. 본 공대위에서는 이 사건을 판단한 법원의 무죄선고가 피해자의 치유의 큰 걸림돌이 될 뿐만 아니라, 유사한 사건의 수사와 재판, 그리고 성폭력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문제제기와 대응활동을 해왔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먼저, 2016년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이 사건의 모의법정을 진행하면서 제작한 ‘가해자의 시선’, ‘피해자의 시선’ 두개의 동영상을 시청했다. 이 영상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사건에 대해 얼마나 다른 언어와 태도를 보이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나 토론회 참가자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첫 번째 발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의 “피해자의 경험과 맥락, 공대위 활동의 의미” 발표가 있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임신한 상태에서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운 그루밍(grooming)을 겪은, 무엇보다 임신으로 인해 하루하루 달라지는 몸의 변화를 보며 피해자가 느꼈을 절망감과 두려움에 법원은 아무 관심이 없음을 지적했다. 피해자의 경험과 맥락을 무시한 이번 판결은 그동안 우리사회가 꾸준히 쌓아온 피해자 권리 보장의 여정을 뒤로 돌리는 판결로, 성범죄자를 준엄하게 처벌해야 할 대법원이 오히려 성폭력을 조장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공대위 활동에 대해서는 서명운동 및 릴레이의견서 등은 의미 있었지만, 좀 더 사회적으로 이슈화하지 못했음을 아쉬움으로 짚고, 관련 연구의 필요성 제기 및 다시 힘을 내서 반성폭력 운동을 해가자는 다짐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두 번째 발제는 법부법인 온세상의 김재련 변호사가 “연예인 기획사 대표 성폭력사건 판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 사건 대법원 판결 자체가 대법원의 심판범위를 벗어난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었음을 지적하고, 피해자 관점에서 사건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피해자가 어떤 두려움, 공포 속에 처해 있었는지, 왜 피해자가 즉각 신고할 수 없었는지, 왜 피해자가 그 당시 저항하지 못한 채 순순히 응할 수 밖에 없었는지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행범죄인지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가 사건 발생 당시 가지고 있었던 주관적 공포가 반드시 기준이 되어야 하며,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가해자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만나게 된 경위, 물리적 힘의 차이,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차이, 두 사람 관계의 본질, 피해자의 지원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예기획사 대표의 여중생 성폭행 사건에 대해 무죄취지로 파기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21세기 가장 폭력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세 번째 발제는 탁틴 내일의 이현숙 상임대표가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 특성, 그루밍(Grooming: 길들이기)” 주제로 발표를 했다.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이 ‘그루밍(grooming, 길들이기)’인데, 그루밍은 성 착취를 수월하게 하고 범죄의 폭로를 막으려는 목적을 갖고 신뢰를 쌓거나 성적 가해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대인관계 및 사회적 환경이 취약한 대상에게 다양한 통제 및 조종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루밍은 낯선 사람에게서, 아는 사람이나 가족·친족으로부터, 온라인에서, 거리에서, 시설에서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연예기획사 대표 사건은 전형적인 그루밍 성폭력이라고 설명했다. 설사 아이들이 동의의 의사를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동의한 관계로 볼 수 없기에, 성인과 청소년이 성관계를 했다면 대가의 유무에 관계없이 성폭력이나 성적 학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피해자 대리인 이학용님의 발표로, 이 사건은 세계에서 가장 어리석은 재판이고 말이 안 되는 재판이라면서, 논술 시험에 이 사건에 대한 사실 관계를 내면 모든 수험생이 다 1심 판결과 같은 판단을 내릴 것이다고 주장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이냐가 문제이므로, 피해자의 말이 있고 가해자의 말이 있을 때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를 잘 판단하고 진실을 밝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은 그걸 무시하고 한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이다. 즉,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계획하여 피해자를 이용한 부분에 대해서 보지 못하고 판단하였음을 지적했다.
토론으로 먼저,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의 “사랑 없는 섹스는 강간일까, 강간이 아니면 다 섹스일까” 라는 제목의 발표가 있었다. 사랑에 대한 재판부의 해석과 태도라며, 1심 유죄판결의 이유 중 하나인 피고인이 주장하는 연인관계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 너무나 당연시 되었던 남성 중심적 성기삽입 행위를 과연 섹스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라고 전제했다. 이 사건은 섹스 행위 자체를 일방이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일 역시 강요행위로, 새로운 쟁점이 제기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한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을 상한한다고 해서 미성년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이 더 보장된다고 보는 것은 성적자기결정권을 단순히 섹스할 권리로 축소시킨다며, 미성년자들에게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성적 권리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의 논쟁이라고 진단했다.
마지막 토론으로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의 쥬리 활동가의 “청소년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사회”라는 제목의 발표가 있었다. 청소년이 겪는 성폭력의 해결책으로 의제강간 연령 상향은 청소년의 주체성과 성적자기결정권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마련하는 대신 청소년이 타인과 맺는 관계에 대해 공권력이 개입해야 하는 문제로 전환하여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고 가정이나 학교에의 종속을 강화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을 했다. 성폭력이라는 피해자의 호소보다 ‘사랑’이었다는 가해자의 주장을 신뢰하는 남성들, ‘사랑’과 폭력에의 두려움이 혼재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가까운 관계 내의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는 재판부, 성별, 나이, 장애 등을 둘러싼 권력관계를 인지하지 않는 사법기관의 문제가, 의제강간 기준 연령 상향으로 과연 해결이 될지 의문을 제기했다.
종합토론시간에는 참여자들의 열띤 질의 및 의견개진이 있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의 앎 활동가는 “연령에 대한 문제(상향/하향)도 있지만, 사랑이면 성폭력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고, 성인도 취약한 상태에 있을 경우 그루밍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그런 현실에서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에 대해서도 이 사건과 관련한 논의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의 이명화 소장은 “우리 공대위가 더 활동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까 고민이 드는데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 전략이 없을까, 여론이나 언론에서 누가 봐도 대법원의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판결에 굴복해야 하는지 화병이 도는 것 같으며, 이런 감정이 나만의 감정이 아닐 텐데 이 것이 오류로 남지 않기 위해서 다시 쓰기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있었다.
또한 장애여성공감의 민들레 활동가는 “아동청소년 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는 많은 분들이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아동청소년 · 성인을 떠나서 가해자에 비해서 취약성이 있었고 가해자가 이를 이용하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겠고 성폭력이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루밍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더 많이 드러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회자인 장애여성공감의 배복주 대표는 오늘 토론회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성폭력 사건 공대위 활동을 통해서 앞으로의 과제도 있겠고 현재까지의 여러 가지 판단 혹은 평가가 있겠지만, 카테고리를 정한다면 첫째, 법률적인 고찰, 쟁점에 대한 고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필요할 것 같고, 둘째, 성폭력 관련해서 개개인의 매뉴얼화되고 정형화된 사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다르고 구현되고 있는 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쟁점이 이동되고 있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 용인되는 성폭력이 아니라 성과 관련된 담론 안에서 쟁점이 굉장히 세분화 되어야 하고 쟁점이 이동되고 있는 상황들을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이 인식하고 공동행동을 하고 토론하고 많이 담론화가 필요한 것 같다, 셋째로, 사회적으로 취약하다는 청소년이나 장애, 성소수자, 이주 등의 집단에 대해 취약하다는 말로만 설명할 것인가 우리가 취약이라는 말을 분석하고 얘기해봐야 할 과제로서 오늘 나이에 관련된 문제가 많이 대두되었는데 앞으로 세분화시켜서 얘기해봐야겠다. 결과론적으로 사실 모든 인간이 차별받지 않을 동등한 시민권을 가진 사회를 지향해야하지 않을까”로 정리했다.
* 본 토론회를 위해 천안차임초등학교 병설유치원생 58명이 바자회(알뜰시장) 수입금과 예방교육 우수로 받은 상금 중 일부를 기부해주셨습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앎의 속기록을 참고해 이미경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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